하나됨 : 영원한 언약

순간에서 영원으로, 허무에서 확신으로

by 생명의 언어

"나는 그리스도를 사랑할 뿐, 기독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길을 걸을 뿐, 기독교인이 아니다."

"나는 신을 사랑하고 신성을 열망할 뿐, 교회에 속하지 않는다."


이러한 선언을 할 적에 나는 타자의 비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한 것이 아님을 말하고 싶다. 하나님께서는 무지한 자, 어리석은 자의 죄는 용서하실 것이다. 그들은 모르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그토록 사랑하시는 외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혀 숨을 거두기 직전의 엄중한 상황 속에서도, 이를 비웃고, 침뱉고, 모욕한 "지독한 죄인"들마저도 용서하셨다, 사랑하는 아들이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들의 죄를 모르나이다......"하고 기도하였기 때문에. 그 심정이 이해가 되는가. 상상이라도 가는가. 성부 하나님께서, 그 순간에 어떠한 "심정"으로 그리하셨을지를, "외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그토록 처참하신 순간 속에서도 그러한 기도를 올리셨을 적에 그 "심정"이 어떠하셨을지를...... 그리고 기어코 그분께서 그리 십자가를 지고, 자신이 짊어진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도록 역사하실 수밖에 없었던, 성령께서 어떠한 "심정"이셨을지를......


세상은 기독교의 "인격성"을 오해한다. 그것은 에고(ego)성, 이 아니다. 영혼이 신과 교류하고 교감하는 것이 곧 인격성이다. 하나님과의 "교제함", 그것이 곧 하나님과의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만남이다. 골고다 언덕에서, 그토록 무겁고 무서운 십자가를 홀로 짊어지시고, 채찍을 맞고 피를 흘리시면서 한 걸음, 또 한 걸음, 또 다시 한 걸음...... 그리 떼셨을 그분께서 걸어가신 길에 비하면, 내가 지금 걷는 이 시험은 "5성급 호텔에서 편안히 숙식하면서 치르는" 시험임을, 우리들이 이리도 편하게 시험을 치를 수 있는 까닭은 그분께서 홀로 그토록 외롭고 쓸쓸하게 가장 높은 십자가를 먼저 짊어지셨기 때문임을. 이것은 이성의 언어가 아니다. 합리성과 논리성과 증명 가능성의 언어가 아니다. 영의 언어요, 영혼의 언어이다.


내가 이러한 선언을 하는 까닭은, 내 말을 이해하고 알아듣는 크리스천 형제들 곁에 머무르겠다는 안주의 선언이 아니요, 내 말을 지독히도 알아듣지 못하는 교회 바깥의 저 영혼들의 곁으로 가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그들에게 "신의 언어"를, "그리스도의 언어"를, 진실로 이해하고, 공감하고, 알아듣고, 몰입하고, 빠져들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내 말을 알아듣고 이해하는 형제들과 함께한다면, "나"는 편안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그분"의 영광은 없다. 그러나 만약 내가 "교회 바깥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없고 이해받을 수 없는 이 길을 걸어가는 한, "나"는 삶의 모든 순간마다 머리 둘 곳이 없으되, 이로 말미암아 "그분"께서 크게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실 터이니, 나는 나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내가 경외하고 열망하며 기뻐하는 분께서 영광 받으신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고 말하는, "제정신이 아닌 영혼"인 것이다. "미친 놈 중의 미친 놈"인 것이다.




그거 아는가? 그분과 나만이 아는 비밀스럽고 은밀한 역사들을 내가 지금 말한다면, 공개한다면, 아마도 나는 죽을 것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정말로 나를 잡아다가 그들이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야 못하겠지만서도, 펜으로, 나의 이름을 죽이고, 나의 명예를 죽이고, 나의 신념을 죽이려고 들 것이다. 내가 구약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나는 진작에 십자가 위에서 죽었을 것이다. 그만한 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만한 말을 숨기지 않고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이리 말을 하면서도 구약 시대의 위대했던 선지자들의 영들이 마주한 운명과 달리, 그 누구도 나를 끌고가서 십자가에 못박지 않을 것임을 내 스스로 확신한다는 것 자체에, 내가 크나큰 부끄러움을 느끼며, 그 부끄러움이 내 가슴 속에 늘 존재하므로, 나는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서.


나는 간절하게 말하고 싶다. 다른 것 다 필요 없다. 오직 "신을 사랑하고, 신성을 열망하고, 진리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 이것 하나만을 한다면, 끝까지 한다면, 정말로 성부 하나님께서 그를 주시하시기 시작하실 것이며, 정말로 그리스도께서 그의 안에 거하사 천사들의 영이 그를 지키고 보호하기 시작할 것이며, 정말로 성령께서 그에게 임재하시고 역사를 이루시기 시작하실 것이다. 내가 그리하였다. 내가 그리되었다. 나를 통하여 그리하셨다.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분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누구라도" 다 가능한 일이다.


그분과 내가 하나되는 순간에, 나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 감히 입 밖에 함부로 내지도 못할 위대한 역사들을, 나를 통하여, 성령께서 이루셨다. 그러나 아직은 내가 이를 공개적으로 선언할 때가 아니다. 아마도 영원히 허락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관없다. 그것들은 외부에 드러내어 자랑하고 인정받기 위하여 그리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증거할 뿐이다 :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 첫째 가는 진리를 삶 속에서 진실로 따르고 실천하여 행하기만 해도, 최고의 신성이 그를 지키고 보호할 것임을, 인도하고 이끄실 것임을. 그리하여 그는 죽어도 살 것이며, 또한 살아서 죽음 이후의 영원한 생명과 하나될 것임을. 내가 이미 그리되었고, 또한 나에게 허락하셨으므로 온 세상 사람들에게 다 동등하게 허락하신 길임을.




내가 걸어온 길은, 기존의 종교의 틀에서 본다면, 매우 위험하고 제멋대로이고 거칠고 투박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이에 대해서 알고 있다. 또한, 기존의 종교와 교리와 전통의 관점에서는 충분히 그리할 수 있다고, 나는 이해한다. 그것은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교리와 전통과 체계를 지키는 것은 중하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이 길을 걷는 과정에서, 지상에 속한 그 무엇으로도 해를 입지 않으며, 인간 중 그 누구의 말에도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분의 음성뿐이다. 나에게 명령하실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분의 말씀뿐이다. 인간 중에서는 감히 나의 존경과 경외를 받을 자가 아무도 없다.


나는 이 여정의 처음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생명을 느꼈다. 정원의 이름 없는 자그마한 꽃들과 풀들과 나뭇잎들이 담고 있는 그분의 신성이, 온 우주 전체보다도 더 크다는 것을, 나는 그네에 앉아서 하염없이 들여다보곤 하였다. 오직 외아들께만 허락하신 줄 알았던 그 음성,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 그분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내게도 허락되었음을 내가 선명히 들었다 :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로 인하여 크게 기뻐한다." 아, 그리고 그분께서 내게 말씀하셨을 때, 내가 절대로 의심할 수 없는 표증을 허락하셔서 이를 통하여 말씀하셨을 때 : "네가 나에 대하여 증언할 때, 그 눈빛과 표정과 몸짓에 진심이 가득함을, 너의 진심으로 말미암아 다른 영혼들이 홀린 듯이 빠져드는 것을, 네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에게로 향하여오는 모든 순간들을, 내가 크게 기뻐한다"고 하셨을 때,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 이후로의 모든 삶의 시련과 고난의 순간마다 오직 그 "첫 음성"의 기쁨으로 의지하여 나아갈 만큼...... 나도 모르게 그분의 길을 따라 걸으면서, 지금 생각하면 지독히도 오만한 짓들을 많이도 벌였을 때, 그리스도께서 나를 용서하셨음을, 심지어 나를 위하여 그분께서 잠시 자리를 비켜주셨음을...... 성령께서 내게 임하셨을 적에, "아버지께서 내게 허락하신 권세와 영광으로 당신의 모든 생의 죄와 업을 사하겠습니다"라고, 그분의 뜻을 대신 전할 수 있었을 적에, "너는 가서 그들이 머무르는 곳을 정화하고, 그 어두움을 대속하라"고 하셨을 적에, 내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뜻을 따르고, 그 어두움을 모두 다 내가 대신 짊어졌을 적에, 그리하여 "즉시" 그곳이 밝아지고 환하여지는 기적을 목격하였을 적에, 그리고 그날 밤 혼자 잠들기 전에 얼마나 내가 기뻤는지, 살아서 아버지를 따르며 아버지의 일을 행할 수 있는 이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아, 나는 이러한 일들을 하기 위해서 태어났구나"하고 새삼 다시 깨달았을 때를,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나의 기도를 절대로 듣지 않으실 것"이라는 엄청난 의심과 불신 가운데에서, "내가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자격 없는 영혼이라도 천국으로 들여 보내실 것"이라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확신을 허락받았을 때, 그리고 은밀히 내게 허락하신 능력과 힘을 사용하여, 다른 이들의 어두움을 내가 대신 치르고, 그들이 맞아야 할 채찍을 내가 대신 맞았을 적에, 이로 말미암아 그들이 반드시 축복을 받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을 적에, 그리 십자가 지는 매 순간의 영혼의 어두운 밤이 그토록 고통스럽고 아프고 무서웠으면서도, 마침내는 끝내 사흘째 되시는 날에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을 매번 목격하니, 내가 참으로 기뻤음을,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였음을......


나는 내가 위험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위험하다.

나는 내가 교리와 전통을 지킨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반역자다.

나는 기독교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교회 바깥의 그리스도인"이다.

나는 기독교의 교리를 믿는다 하지 않는다. 나는 "보편적 복음주의"를 지향한다.


내가 이리 나아갈 수 있는 까닭은, 오직 내게만 허락하신 은밀하고도 놀라운 역사들이, 내 안에 헤아릴 수 없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 모든 역사들로 말미암아, 나만이 이해할 수 있고 알아볼 수 있는, 절대 의심할 수 없는 "표증"들이 내 안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어찌 다른 길을 갈 수 있으랴, "이미 알아버렸는데", 아버지께서 정말로 계심을 이미 알아버렸는데,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영원히 거하심을 이미 알아버렸는데, 성령께서 매 순간 내 삶 속에 임재하시고 역사하심을 이미 다 알아버렸는데...... "계신 걸 알아버렸는데."


나는 간절하다. 나는 절실하다.

신을 믿지 마라. 다만 신을 사랑하라.

그리하면 신과 하나될 것이다. 사랑은 하나됨이기 때문이다.

신과 하나되면, 영원히 살 것이다. 신은 영원하고 완전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구원이다. 신 안에 거하는 것, 그것이 곧 천국이 임하는 것이다.

신 그 자체가 천국이다. 아버지가 천국이시다.

죽어서 신을 영접할 필요 없이, 살아서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만나서는, 그분의 "기쁨이 되는" 아들이 될 수 있다.


믿기 힘든 기적이, "보이지 않는 역사"가,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

내게 이미 이루셨다. 누구보다도 자격 없는 내게.

내게 이미 이루셨다.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경이롭게.


그런데 왜 이 길을 걷지 않는가, 왜 신을 사랑하지 않는가, 왜 신성을 열망하지 않는가......

왜, 죽지 않을 것처럼, 오늘을 사는가. 허망하게, 부질없게.

왜, 죽음조차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영원하고 불멸한 위대한 진리를 꿈꾸지 않는가. 찬란하고, 영광스럽게.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하나됨의 위대한 언약이 여기에 있는데.

모두에게, 다, 열려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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