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물건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그렇게 덥더니 가을바람은 불어오는군요. 아침 저녁에는 제법 선선하고 햇볕도 여름의 독한 기운이 빠지고 한결 순하고 투명해졌어요.
매주 월요일은 서점인으로 사는 저의 휴일입니다. 더위에 지쳐 미루던 집안 대청소를 오늘 마침내 해치웠네요. 집안 곳곳을 쓸고 닦고난 후 옷정리를 했습니다. 사실 두 주 전쯤 정리할 옷들을 빼서 쌓아두었는데 오늘 그것들을 다시 가려냈죠.
아무리 물건을 사지 않으려 다짐해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옷과 책이 늘어나 있었어요. 소비일기를 써보기도 했고 제로웨이스트에 관한 책을 읽으며 각오를 새롭게 다져보기도 했지만 매번 작심은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어요.
사용하지 않는 가방들, 사서 한 번 입어보고 걸어만 둔 옷들, 모두 정리해서 큰 비닐 가방에 담았어요. 아파트 앞 재활용 코너에 내가려 합니다. 제가 사는 곳은 읍단위의 시골인지라 재활용품을 가져다줄 수 있는 가게도 없거든요.
3년 전 어머니 장례를 치르면서 사람이 한 생을 살다가 마지막에 가져갈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새삼 했거든요. 그랬음에도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도 하고 자본의 유혹에 약한 존재이기도 한지라, 집안에 물건은 쌓여만 가더군요. 사실 살아가는 동안에도 따지고보면 우리는 그다지 많은 물건이 필요치 않거든요. 자주 예쁜 상품에 현혹되어, 혹은 사고 싶은 충동을 못 이겨, 또는 스트레스를 풀 요량으로 물건을 사게 되었어요. 더이상 물건을 늘이지 않고 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말짱한 물건들을 재활용으로 분류하면서 자신의 소비습관을 돌아보게 됩니다. 가지고 있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하고 그것들을 소진시키는 것이 물건에 대한 책임있는 태도겠죠. 그 물건들도 대부분 지구 위의 한 생명에서 비롯된 것일테니 성의껏 사용하는 것이 예의이기도 하구요.
물건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사람도 함부로 대한다, 라는 말을 철학자 김진영 선생님이 수업에서 하신 적 있어요. 도서관 인문학 수업에서 김진영 선생님을 딱 한 번 뵌 기억이 있는데 유독 그 말씀이 제 마음에 오래 남더군요. 제가 물건을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편이라 좀 찔렸었고 사람관계도 칼같이 정리하기도 하는 편이거든요. 내내 곱씹게 되는 말이었어요.
무언가를 끝없이 탐하게 되는 마음을 가만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결국 해소되지 않은 결핍이 도사리고 있더군요. 결핍을 그렇게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인간은 어리석기도 합니다. 탐하고 화내고 어리석고... 대단한 존재같지만...그게 인간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열어둔 거실 창으로 가을 햇살 넘실거리며 비쳐듭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오후 햇살이 유난히 좋은 집이거든요. 아침이면 들려오는 참새소리와 오후햇볕 때문에 이곳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공간은 사람을 닮는다 라는 말이 있던데 좀더 절제하여 제가 사는 공간을 아름답게 가꾸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계절 탓인가 싶기도 해요. 요즘 여러 생각들이 오고가기도 하고 돌아보게도 되거든요. 곧 첫서리 내리는 절기가 오고 짧아서 소중한 가을이 지나가겠지요. 배움과 깨달음을 책에서만 얻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요즘 하게 되고, 주변 사람을, 흘러가는 자연을,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곁에 있는 사물들을 새롭게 보게 됩니다. 가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