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솔직한 고백
시골에서, 대가족 속에서 자랐거든요. 조부모님, 부모님, 많은 형제자매들 틈에서 복닥거리며 살았어요. 아버지께서 장남이셔서 집안에 늘 일가친척들이 드나들었구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예민한 성격이었던지라 그런 분위기를 유독 힘겨워했었어요. 명절이면 일가친척들이 저희집에서 몇날몇일을 숙식을 함께 했었는데 정말 괴로웠거든요. 특히 추석명절에 딸들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었던 일, 갖가지 전을 부쳤던 기억은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아요. 사람에 따라서는 당시에는 다소 괴로웠던 과거를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게 각색하기도 하지만 저는 그런 재능은 없거든요.
딸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받았던 부엌일들, 밥상 시중 같은 것들에서 해방된 것은 스무살이 되어 독립해서 살면서부터였어요. 저는 솔직히 홀가분했어요. 많은 식구들 틈에서 부대끼지 않아도 되었던 것도, 제가 원하지 않는 의무들에서 놓여난 것도요.
제사도 없는 집안인데 명절음식 하지 말자고 몇번이나 건의를 해도 어머니께서는 그때마다 각각의 이유를 대시며 안된다 하셨어요. 그 이유는 아버지 살아계실 때까지는 안된다,일 때도 있었지만, 아버지 돌아가시자 오빠가 남기고 가신 조카들때문에 명절음식을 해야 한다,라는 것으로 바뀌기도 했어요. 부엌일은 여자가 해야 하는 것이 지당한 어머니였으므로 결국 일은 모두 딸인 제몫이었고 저는 짜증을 있는 대로 내보았지만 그때마다 어머니는 완강하셨어요.
매번 명절마다 다 먹지도 못할 만큼의 음식을 하고 집안에 다녀가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달가워하지도 않는 음식 봉다리를 손에 들려 보내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 저희 어머니였거든요. 저는 명절때마다 진저리를 쳤구요. 그것을... 지금도 저는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거든요.
어머니와의 마지막 추석이 가끔 생각나요. 그때도 명절 앞두고 근처에 사는 제게 어머니께서 전화하셔서 명절음식 준비하기를 종용하셨어요. 제가 마음 단단히 먹고 화를 제대로 냈었고 통화는 끊겼고 음식준비하러 어머니집에 가지 않는 것으로 일단락됐었구요.
그 행동이 후회가 남거나 하지는 않아요. 제가 살면서 딸로서 어머니께 감정표현은 그때 한 번 제대로 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서울에서 당신 손자가 오므로 명절음식을 하러 오라는 어머니께 정말 화가 치밀었거든요.
그 추석 지나고나서 어머니는 거동이 어려워지셨고 치매가 함께 왔었고... 결국 요양병원에 가시게 되었어요. 입원하시고나서 8개월 후 떠나시게 되었구요. 오십이 훌쩍 넘은 나이인데도 고아가 된 기분이 들더군요. 부모를 잃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더군요. 스스로 가정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더이상 누군가의 딸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서 오는 홀가분함도 한편 컸어요. 이런 고백, 조금 어렵네요. 이제야 내가 진정 나로서 살 수 있다는 자유, 분명 그런 기분도 느꼈어요.
이 세상에서 저와 이어진 마지막 끈이었던 어머니 떠나신 지 삼년을 넘어서는 이번 추석은... 특별히 마음이 담담하고 평온해요. 마지막 정을 떼려는 것인지 명절음식 만들어 파는 풍경을 지나치는데 싫은 감정이 갑자기 확! 올라오더라구요. 감기 몸살 기운이 아직 다 가시지 않아 입맛이 돌아오지 않은 까닭도 있겠지만요.
이제 부모님은 제가 다가가려 해도, 펼쳐보려 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한 권의 책으로 남은 것 같아요. 아마도 영원히 알 수 없는 영역일지도 모르겠어요. 세대차도 분명 있었을테고... 오빠들을 모두 잃고나서 남은 손자들에 대한 집착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 폐해가 온전히 제게 왔기 때문에 그때마다 몸서리쳤던 제 감정도, 안타까울 뿐이었어요.
추석, 각자 다양한 모습으로 보내고 계실테지요. 제가 일하는 서점은 직원들이 추석 당일 포함해 4일을 쉬어요. 직원들이 교대로 쉬기 때문에 추석 당일만 휴점하구요. 저는 오늘이 마지막 휴일입니다. 비가 연일 내리고 하늘이 흐려서 밝고 둥근 보름달 구경하기가 힘드네요. 그래도 차분하고 잔잔한 요런 명절 분위기, 좋은 것 같습니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 있는 문장을 보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