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이야기가 수어시로 탄생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다. ‘수어 문학’이라는 말이 존재한다는 것도, 그 안에 사랑과 아픔 그리고 수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는 것도.
여름의 끝자락, 국립특수교육원에서 수어 연수를 들으며 일주일을 보냈다. 연수에서 B 교수님을 만난 건 큰 행운이었다. 그를 통해 수어 문학을 알게 됐고, 수어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몇몇 나라에서는 이미 수어 문학 활동이 활발하지만 한국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고 한다. 그 중심에 교수님이 계셨고, 그는 '수어민들레'를 세워 한국에서도 수어 문학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힘쓰고 있었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성남농아인협회에서 진행하는 수어 문학 수업을 알게 되었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수업을 신청했다. 신청 마감 직전, 딱 3자리가 남아 있었다. 그중 한 자리를 운명처럼 얻었다.
첫 수업에서 교수님을 다시 만났다. 약 2주 만에 다시 보니 반가웠다. 이전과는 또 다른 깊이로 그에게 ‘문학’을 배웠다. 시, VV, 책, 미술 등 수어의 세계에도 다양한 형태의 문학이 존재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데비아’(Deaf Art)'였다. 저항, 해방, 지지, 데비아의 주제는 3가지다. 농인으로 살면서 경험한 것들을 그림으로 풀어냈다. 수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손이 묶인 농인, 동물원의 동물처럼 묘사된 농인, 자신의 언어를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인공와우 수술을 받는 농인까지, 그들의 억압당한 삶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수어가 들어간 풍경화도 참 매력적이었다. 수어로 파도, 구름, 배를 묘사한 그림, 수어로 간판을 표현한 그림까지. 데비아를 통해 나도 이런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나도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이렇게 표현해 보고 싶다고, 나의 감정도 이 언어로 이야기해보고 싶다고 말이다.
수어 문학 수업의 종착지는 '수어 문화제' 참가였다. 처음엔 수어 문학의 다양한 종류에 대해 배웠고, 보이는 것을 수어로 표현해 보는 연습을 했다. 이후엔 수어 이야기, 시, VV, 노래 중 하나를 선택해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어야 했다. 나는 수어시로 결정했다. 주제를 정하라고 숙제를 내주셨지만 몇 주간 아무런 단어도,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쩐지 내 안에 없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마침 한 영상을 보고 영감을 받았고, 10분 만에 시를 완성했다. 아마 수없이 생각했던 이야기가 내 안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할머니, 나의 두 번째 엄마. 영상을 보자마자 알았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할머니'라는 것을. 할머니는 19년 10월 24일 날 돌아가셨다. 날짜도 잊을 수 없다. 할머니 손에 자라 할머니는 엄마나 다름없는 분이었다. 어릴 적 할머니와의 추억을 하나 둘 떠올려 시를 써 내려갔다. 매일 같이 지어주시던 맛있는 밥, 우리만의 놀이였던 화투, 더운 여름날 할머니 무릎에 누워 받았던 시원한 부채질, 우리에게 주려고 감을 따다 나무에 떨어지신 일까지. 할머니와 겪을 일상을 시작으로 할머니가 부재한 지금의 일상까지 모두 시에 담았다.
한글을 수어로 옮길 때 많은 도움을 받았다. 따뜻한 밥을 지어주시던 손, 감을 따던 손, 토닥여주던 손 그리고 그 손이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아침. 할머니의 따뜻했던 손이 나의 손이 되어 수어로 표현됐다. 시는 추억에서 슬픔으로, 마지막엔 그리움으로 끝이 난다. 수어 문학을 통해 ‘말하지 않고도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들리지 않아도 들을 수 있다’는 걸 믿게 되었다.
나는 청인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농문화를 알리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 글, 사진, 그 모든 것이 수어와 닿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 다리가 되고 싶다. 어쩌면 언젠가 내가 가르치는 교실에도 수어 문학이 들어설 수 있지 않을까. 그곳에서 또 우리들의 이야기가 수어로 남겨졌으면 한다.
아직 나는 이 길의 끝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길이 너무나도 궁금하다는 거다.
그리고 그 길은 분명, 재미있을 것이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