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주정

왜 술만 마시면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걸까?

by 혼돌멩이

오후 햇살이 내 컴퓨터 모니터까지 비추는 것을 보니 퇴근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황급히 블라인드를 내리고 시계를 보니 어느덧 오후 5시가 되었다. 왠지 이 시간만 되면 항상 불안하다. 누군가가 난데없이 나의 일상을 불쑥불쑥 비집고 들어오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무실 문이 열리며 옆 사무실 임 대리가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말을 건넨다.


“과장님 시간 되시면 담배 한 대 피우시죠?”

“휴, 알았어”



무슨 이야기인지 대충 감이 와서 한숨을 쉬며 담배를 들고 옥상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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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대리는 담배에 불 붙이기가 무섭게 웃으며 말을 던진다


“혹시 오늘 시간 되세요? 간단히 저녁만 먹고 가시죠.”

“간단히는 무슨.. 너는 술 좀 그만 먹자고 해라. 지겹지도 않니?”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래도 술 먹자고 해주는 사람은 항상 고맙다. 몇 되지도 않고, 내가 먹고 싶을 때도 항상 함께해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렇게 일단 대답하고 임 대리의 반응을 잠시 살펴본다. 왜냐하면 실상 이런 권유는 낚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은 정말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아서 먹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낚시인 경우가 있긴 하다. 그래도 정말 먹어야 될 경우는 바로 알 수 있긴 하지만.


사실 원래부터 나는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부모님은 술을 좋아하지만, 나의 술에 대한 경험이라고는 어렸을 때 시골에서 호기심에 마셔본 포도주 한잔과 고등학교 때 수능을 100일 남겨두고 먹어본 소주 몇 잔 정도이다. 그리고 대학교에 올라와서도 이상하게 주변에 술을 다 못하는 사람들이라 술자리도 자주 없었을뿐더러 술을 마시더라도 그렇게 많이 마시지는 않았다. 아주 간혹 많이 먹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술에 대한 내성이 없다 보니 숙취로 고생한 기억뿐이다. 물론 지금 내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코웃음을 치며 아무도 믿지를 않겠지만 말이다.


술을 본격적으로 먹은 것은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다. 본격적이라고 하니 무슨 프로 알콜러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만큼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체질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내 의지대로가 아닌 그러한 환경에서 적응한 것이라고나 할까? 회식이란 것도 처음 접해봤고 술을 1차 2차 3차 밤새 먹는 문화를 접해본 것도 처음이었다. 그렇게 몸을 축내가며 먹다 보니 입사하고 1년 2년도 채 안되어 나는 어느샌가 술과 술자리를 즐기는 평범한 아저씨가 되어가고 있던 것이다.


퇴근할 때쯤이 되면 갑자기 술이 당기는지 한 번씩 저녁을 권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통 나는 술을 먹더라도 이틀 연속은 먹지 않는 주의라서 갑작스러운 약속은 곧잘 거절하는 편이다. 오늘도 갑작스러운 제안이긴 하였지만 최근 너무 또 거절만 한 것 같아 승낙을 하고 일을 마치는 대로 만나기로 하였다. ‘그래 오늘은 이 얘기를 좀 해줘야겠군.’이라고 마음먹고 있는 줄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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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한잔 두 잔 들어가니 역시 금세 취해버린다. 직장상사인 유부남들에게 술을 배워서 그런지 빨리 먹고, 빨리 취해서, 빨리 집에 간다 라는 것이 몸에 밴 듯하다.


술을 마시면서 느낀 것은 내가 술자리에서 말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목소리도 커지고 말도 많아진다. 스스로 생각해 본 바로는 평소에 말 못 하는 소심한 나라는 인간이 술이 들어가면 그동안 말 못 하고 억눌렸던 반동으로 더 말이 많아지는 거라 결론지었다. 즉 평소에 쌓여있던 말들을 술 먹은 김에 거침없이 내뱉어버리는 것이다. 나와 동년배의 친구들이야 크게 개의치 않고 그것을 안주 삼아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후배들은 아마 잔소리로 생각하는 경우도 많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잔소리 위주이기 때문이다. 평소에 못했던, 지적하고 싶었던 말들을 그때서야 풀어내버리고 했던 말들을 하고 또 하고 반복하니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괴로울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적당한 잔소리야말로 술자리의 묘미가 아닐까 한다. 물론 이것은 단순한 잔소리가 아닌 상대방의 발전을 위한 건전한 충고와 조언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내가 술자리를 즐기는 이유는 웃고 즐기는 술자리도 때론 좋지만 평소에 얘기하기 어려운 주제들(때론 무겁고, 때론 잔소리가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조금이나마 쉽게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술의 힘을 빌어 이야기한다는 것이 모양새가 안 좋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술자리에서 이야기해야 잘 풀리는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들을 함께 이야기함으로써 서로의 속내를 한 번씩 더 확인하고 더 믿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간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주 가끔 잘 안 풀릴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임 대리는 직장에서 만난 후배로 집도 가깝고 동호회 활동도 같이 하고 사무실도 가까워 금세 친해진 후배이다. 대인관계가 서투른 나에게는 몇 안 되는 술친구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잔소리를 하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주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말인즉슨 아무리 뭐라 해도 그냥 그렇게 넘어간다는 뜻이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무튼 그렇게 임 대리와 인연이 된 것도 벌써 5년째에 접어들었다. 친하게 된 계기는 물론 있겠지만 술자리를 하면서 더 깊이 이야기하고 서로 알게 된 것도 사실이라 생각한다.


물론 술자리라는 것이 사람과의 인연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의 촉진제 역할을 해주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술잔을 나누고 평소 제정신일 때는 하지 못한 이야기를 술에 취해 조심스럽게 때론 거침없이 쏟아내고 평소 알지 못하던 상대방에 대해서 그렇게 조금씩, 더 깊이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관계가 구축된 후에의 이야기이지 친하지 않은 특히 선후배 사이의 술자리에서 지적질을 했다가는 지금은 꼰대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회사는 기본적으로 일을 밑바탕으로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따라서 일이 엮이고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인간관계가 발전될 수는 없다. 그래서인지 사회에 나와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은 확실히 거리감이 있다. 회사 내에서 인간적으로 너무 친해져서 곤란했던 경우도, 너무 일 적으로만 대해서 곤란했던 경우도 모두 겪어본 바로는 정답은 없다. 정답이 있더라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어떤 스타일도 한쪽에 치우치면 역시 독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 나는 아무리 업무적으로 만나더라도 결국은 사람 대 사람으로의 만남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관계를 밑바탕으로 일을 하고 싶다. 회사라는 것이 일만 하는 장소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일 적으로만 만나는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어찌 보면 철없는 생각을 아직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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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그렇게 평소 못했던 이야기, 개인적인 이야기, 잔소리, 불평불만 끊임없이 쏟아냈다. 술자리는 1차를 끝내고 2차까지 왔는데도 1차에서 했던 이야기를 이어서 하고 있다. 이상하게 술만 먹으면 했던 얘기 하고, 또 하게 된다. 그 얘기가 그 얘기인데 같은 얘기를 안주 삼아 몇 시간이고 떠들고 있다. 임 대리도 지겨운지 졸려하는 눈치다. 그래도 웃으면서 이제 그만 일어날 것을 권한다.


“과장님 이제 그만 일어나시죠. 그 얘기만 벌써 몇 번째예요. “


“그래 이제 그만 가자. 근데 내가 왜 자꾸 했던 얘기 또 하고, 했던 얘기 또 하고 하는지 아니?

아무리 열심히 말을 해도 상대방에게 진심이 전달되는 게 쉬운 게 아니거든


실상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순간, 표현하고자 하는 바의 90%만 표출되고 10%는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만큼 말이란 것은 100마디 중 한마디만 잘못해도 다르게 받아들여지기 쉬운 것이고 설사 100% 표현해냈다고 해도 그것을 상대방이 100% 나와 똑같은 생각으로 받아들여 줄지는 미지수인 것이다. 그만큼 사람의 마음이란 것은 표현해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결국 내일이 되어 술이 깨면 내가 이야기하고자 한 바를 잘 전달했는지, 못다 한 부분으로 상대방이 내 말을 오해하지 않을지, 혹시나 말실수는 없었는지 또 걱정이 시작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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