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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담 Jul 10. 2021

번외편: 라면은 끓일 줄 안다고?

조리법을 준수하자. 진리는 대개 교과서에 있다.

<놀면 뭐하니>의 라섹, 유재석을 보며 속이 터졌다. 구내식당 주방장은 분명히 면부터 먼저 건지라고 했는데 시키는대로 하지 않는다. 물도 정량을 알려줬지만 눈대중으로 하다 물바다가 된다. 국물이 자작해야 할 유산슬라면에 국물을 드립다 부을 땐 뒷목을 잡을 뻔 했다. 짜장라면에 계란후라이 반숙을 올려달라는 주문에 괜시리 화만 낸다. 라면은 잘 끓인다며? 아니다. 유재석은 라면을 단지 끓일줄 아는 것 뿐이다.


요리 못하는 이들이 되지도 않는 부심을 부리는 분야가 있다. 라면 끓이기와 삼겹살 굽기다. "내가 그래도 라면은 잘 끓여". 나도 그랬다. 누나가 "니가 라면은 잘 끓이지"라고 해줘서 정말로 내가 '특별히' 잘하는 줄만 알았다. 그게 입에 발린 우쭈쭈인줄도 모르고 말이다. 비슷한 경험이 또 있다. 군대에서 였다. "니가 믹스커피는 잘타지." 그 한 마디에 그는 제대할 때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믹스커피를 전담했다. 칭찬은 요알못도 춤추게 한다.


평생 밥 한 번 해 본적이 없는 우리 아버지마저 라면만은 직접 끓여줄 때가 있었다.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요알못들은 밥을 누가 해주거나 사먹었으니 요리도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간혹 생존을 위해, 또는 나가서 사먹는 것조차 너무나 귀찮아서 부득이 누구나 한 번은 해봤을 음식, 그래서 할 줄 아는 것, 그게 라면이다.


#봉지 뒷면, 조리법을 반드시 확인하자.


라면을 단순히 끓이는게 아니라 '잘' 끓이려면 봉지 뒷면의 조리법부터 봐야 한다. 진리는 대개 교과서적인데 있다. 라면 개발자들이 최적의 맛을 내는 방법을 압축적으로 기재한 것이 바로 봉지 뒷면의 조리법이다. 예컨대 진라면의 조리법은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1. 물 550ml(2컵과 3/4컵)에 건더기스프를 넣고 물을 끓인 후

2. 분말스프를 넣고 그리고 면을 넣은 후, 4분간 더 끓입니다.

3. 분말스프는 식성에 따라 적당량 넣어 주시고, 김치, 파, 계란 등을 곁들여 드시면 더욱 맛이 좋습니다.


위 음영 및 색깔 강조는 내가 임의로 넣은 게 아니다. 실제 조리법에 강조된 방식 그대로 넣었다. 애초에 핵심만 간추린 조리법이므로 뭐 하나 버릴 게 없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저 세 가지(물의 양, 끓이는 시간, 분말스프 조절)만은 지켜달라는 간곡한 당부다. 물의 양은 정확히 맞추기 어려울까봐 "2컵과 3/4컵"이라고도 써놨다. 3컵도 아니고 두컵반도 아니고 3/4컵이라니. 컵의 용량도 써놨으면 좋았겠지만 역산해보면 가장 일반적인 200ml 컵을 기준으로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대충 눈대중으로 해도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오해다. 매일 쓰던 냄비, 그러니까 이미 시행착오를 여러번 거쳐 눈대중으로도 물의 양을 맞출 수 있는 냄비에서만, 그것도 라면 한 개만 끓일 때만 눈대중으로 맞출 수 있다. 라면 두 개 이상을 끓이거나 냄비가 바뀌면 또다시 시행착오를 해야 한다. 좀 넉넉히 올린 뒤 면을 넣어보고 많다 싶을 때 물을 따라 버리는 비법을 쓸 수도 있겠지만(내가 과거에 쓰던 방법이다.) 이 방법을 쓰면 조리법의 다른 부분들을 지킬 수가 없다. 조리법에 따르면 면은 건더기와 분말스프를 다 넣은 뒤 맨 마지막에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스프를 넣은 물을 따라버릴 수는 없지 않나.


#라면도 면요리다. 스프를 먼저 넣어야 육수가 나고 소스가 면발에 밴다.


꼭 스프를 먼저 넣어야 하나 생각하겠지만 조리법이 굳이 저런 순서로 써 둔데는 다 이유가 있다. 우선 건더기스프는 맨 처음부터 넣어서 같이 끓이라고 돼있는데, 이는 육수를 내는 과정이라 그렇다. 요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든 국물요리에 육수는 기본이다. 야채육수든 고기육수는 육수를 내야 맛이 난다. 라면도 국물요리인 이상 건더기스프(파와 고기 등이 들어 있다.)를 처음부터 넣어 끓여서 육수를 내는 것이다. 고작 건더기스프 따위로 무슨 육수냐 싶겠지만 분명히 차이는 있다. 참고로 기호에 따라 곁들이라는 파나 콩나물도 처음부터 같이 넣어서 끓이면 좋다.


분말스프와 면은 하나의 항에 같이 나열되어 있어 마치 같이 넣어도 되는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조리법에는 분명히 분말스프를 넣고 "그리고" 면을 넣으라고 되어 있다. "분말스프와 면을 넣고"가 아니다. "분말스프를 넣은 다음에 면을 넣고"다. 면요리는 면을 국물과 같이 끓여내는 것이 있고 따로 끓여내는 것이 있다. 칼국수는 같이 끓이면 걸쭉한 국물이, 따로 끓여내면 맑은 국물로 나온다. 짬뽕은 보통 면을 따로 넣지만, 고급 중국집에 가면 같이 끓여내주기도 한다. 같이 끓이는 경우는 면에 국물맛이 배어들게 하려는 것이다. 국물라면은 명백히 같이 끓여내야 하는 면요리다. 따로 끓여낸 라면 맛이 궁금하다면 중고등학교 매점 라면 맛을 떠올려보면 된다. 면과 국물이 묘하게 따로 놀던 그 맛이다. 그래서 분말스프를 먼저 넣고 면을 넣음으로써 국물이 면에 잘 배어들게 해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조리법을 잘 지키려면 처음부터 물의 양이 550ml로 정확해야 한다.


물 550ml를 정확히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계량컵이 집에 있으면 좋겠지만 없으면 자판기 종이컵을 사용하면 된다. 자판기 종이컵은 190ml다. 이 컵으로 3컵을 넣으면 거의 550ml에 딱맞게 된다. 요즘엔 아예 냄비에 눈금이 적혀 있는 것도 많이 있으니 이런 냄비를 사면 훨씬 편리하다. 4분간 끓이는 건 더 쉽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 타이머를 쓰면 된다. 인덕션을 쓴다면 자체 타이머도 있다. 눈대중보다 훨씬 정확하고 실패할 일이 없다.


마지막으로 김치, 파, 계란 등을 곁들여야 한다. "등"이므로 다른 것도 넣어도 된다는 거다. 개인적으로는 콩나물을 조금 넣는 것을 추천한다. 계란도 이왕이면 그릇에 젓가락으로 노른자와 흰자를 풀어서 넣어주면 더 좋다. 설거짓거리를 줄여야 하니 라면을 담을 라면그릇에 라면을 먹을 젓가락을 이용해 풀자. 라면에 넣을 때도 면을 먼저 그릇에 건져낸 뒤 남은 국물에 계란을 넣어 가볍게 한두번 휘저어주면 국물이 지나치게 뿌옇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놀면뭐하니에서 MBC 구내식당 주방장도 이렇게 하라고 팁을 주는 장면이 있다.).


#마누라가 오기 전에 국물을 붓지 말 것


마누라와 같이 2인분을 끓일 땐 물도 당연히 1,100ml를 넣어서 해야 한다. 다 끓이고 나면 집게로 면부터 그릇 두 개에 똑같이 나눠담는다. 이 때 절대로 국물을 미리 붓지는 말아야 한다. 마누라를 부르고, 마누라가 식탁에 오면 그 때 국물을 부어 내야 한다. 마누라는 절대 식탁에 바로 오지 않고, 라면은 불면 맛이 없기 때문이다.



<라면 '잘' 끓이기 공략 매뉴얼>

1) 냄비에 조리법상 물의 양을 정확히 계량해 넣는다. 잘 모르면 종이컵(190ml)을 활용한다.

2) 건더기스프와 파, 콩나물 등 야채를 넣고 끓인다.

3) 물이 끓으면 분말스프를 먼저 넣는다. 짠 라면이 싫다면(과연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스프를 조금 덜 넣는다.

4) 면을 넣고 조리법에 나온 시간만큼 끓인다. 스마트폰 타이머를 활용하자.

5) 면이 끓는동안 계란을 라면그릇에 젓가락을 이용해 풀어두고, 김치도 식탁에 꺼내둔다.

6) 타이머가 울리면 불을 끄고, 집게로 그릇에 면부터 덜어 담은 뒤 국물에 계란을 넣어 가볍게 한 두번만 저어준다.

7) 마누라를 부른다. 마누라가 식탁에 오면 그릇에 국물을 부어 낸다.


진리는 대개 교과서에 있다. 조리법에 충실하면 라면도 면요리가 된다.
"조리법에 유의하시고"라고 다시 한 번 조리법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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