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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적 투쟁으로서의 죽음정치

Zerubavel(1997)과 Brekhus(2007)의 글을 읽고

by 한이 Mar 27. 2025


   Zerubavel(1997)의 단행본 『The Sociology of Mind』의 1장 ‘Social Mind Scapes’는 심리학이나 언어학, 인지 과학 등과 구별되는 인지사회학의 학문적 필요성을 이야기하며 인지사회학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개괄적으로 논한다. 저자는 기존의 인지과학이 인지의 사회적 차원을 경시해왔음을 문제화하면서, 사고의 사회적 -전적으로 주관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은- 특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 개인이 꽤 많은 부분에 있어서 사회, 정확히는 자신이 속한 사고의 공동체(thought community)가 공유하는 관념적 규범이나 사고의 틀 안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점에서 인지사회학은 우리가 사회적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혹은 특정 사회의 문화가 어떠한 경향성을 띠는지 등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인지사회학은 인간의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지적 다양성(cognitive diversity)과 인지적 차이, 그리고 학습되는 규범으로서의 인지 즉 인지의 사회화(cognitive socialization)를 강조한다고 설명한다.


이와 유사한 내용과 맥락을 공유하는 Brekhus(2007)의 ‘The Rutgers School: A Zerubavelian Culturalist Cognitive Sociology’는 ‘Zerubavelian 문화주의적 인지사회학(Zerubavelian culturalist cognitive sociology)’ 패러다임을 소개하며 구체적으로 Rutgers 학파의 인지사회학에 대해 논한다. 저자는 Rutgers 학파의 주요 이론적 뿌리가 되는 학자들 및 연구 방법론에 대한 설명과 함께, Rutgers 학파의 주요 기여 연구 분야이자 관심 대상으로 인지적 다원주의, 지각과 주의, 기억과 시간, 분류와 의미의 형성, 정체성, 사고 공동체 등이 있다고 설명한다. Zerubavelian 인지사회학은 사회적 인지를 분석하는 분석적 문해력(analytic literacy)를 제공하며, 전통적 사회학과 인지과학의 사이에서 사회적 사고를 연구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 된다고 결론 짓는다.


가장 크게 다가왔던 것은 Zerubavel(1997)의 글에서 사람들 사이의 인지적 차이가 사회적 불화, 논쟁,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며 특정한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을 둘러싼 논쟁을 ‘인지적 투쟁(cognitive battle)’이라 명명하는 대목이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죽음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수많은 ‘인지적 투쟁’들이 떠올랐다. 세월호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희생자 유가족들의 요구, 코로나19 백신 부작용 인정을 둘러싼 무시와 투쟁, 삼성전자 백혈병 사망 노동자 산업재해 판정까지의 10년이 넘는 기다림의 시간, 10.29 이태원 압사 참사 당시의 2차 가해 발언과 저항, 특성화고 실습생 노동자 사망사건들을 둘러싼 처우 개선 및 산재 인정의 요구,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에 대한 모독과 애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둘러싼 조롱과 애도 등…. 이는 단순히 개인의 싸움이 아니라 사회적 집단들 간의 싸움이었다. 왜 어떤 죽음은 숭배되거나 애도되고, 어떤 죽음은 (강요된) 무관심 속에서 왜곡되거나 잊힐까. 왜 어느 시대 혹은 국가에서는 주목 받은 죽음이 다른 시대나 국가에서는 무시받을까.


다분히 인지사회학적인 이 질문은 사회학자 론 아이어만이  『Cultural Truma』에서 “트라우마를 만들어내는 것은 경험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그 경험을 기억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한 것과 맞닿아있다. 모든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이상 우리 사회는 몇 개의 죽음을 선택적으로 기억할 수밖에 없는데, 과연 그 집합적 기억의 선택에 있어서 상호주관적 합의는 어떻게 가능할까? 특히 오늘날 정치적으로 양극화된 한국 사회에서는 정파적으로 양분된 사고 공동체(thought community) 간 인지적 투쟁이 너무나도 극렬해서 도무지 상호주관적 합의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인지사회학은 죽음의 정치학이 나아가는 길에 유의미한 보탬이 될 수 있을까? 죽음이 트라우마가 되지 않는 집합적 기억을 만드는 데에 인지사회학적 연구가 보탬이 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다. 두 글을 종합하여 보면 인지적 공통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주목하여 객관성이나 상대성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 인지사회학의 특유한 강점이지만, 그러한 인지적 다양성야말로 우리 사회를 조각내고 병들게 하고 있다면 인지사회학은 이러한 인지적 다양성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대답해야 할 것이다. 쉽게 말해, ‘이러저러한 사회적 요인들로 인해 극우화된 사람들이 A의 죽음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인지적 차이가 나타난다’라는 식의 설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호주관적으로 올바른’ 집합적 기억을 구축하기 위한 실천적 연구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 참고문헌

- 에바 일루즈. (2023). 근대 영혼 구원하기 (박형신&정수남 역), 한울아카데미. (원서 출판 2008)

- 천정환. (2021). 숭배, 애도, 적대. 서해문집.

- Eyerman, Ron. (2001). Cultural Trauma. Cambridge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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