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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 Aug 17. 2024

오감의 향연, 피치 코블러와 복숭아 잼

8월 식탁

늦여름으로 치닫는 이 맘 때면 반드시 만들어 먹는 디저트가 있다.

바로 피치 코블러(peach cobbler).


코블러는 오븐용 그릇 바닥에 과일을 달달하게 조려 채우고, 그 위에 밀가루와 버터를 버무린 반죽을 두툼하게 덮어 구워낸 파이류를 가리킨다.

눈에서부터 호사를 누리는 예쁘고 깔끔한 디저트라기보다 큰 무쇠 팬이나 파이 틀에 덩어리째 구워내는 시골풍의 투박한 음식이다.

주로 미국과 영국에서 많이 먹는다.

미국에서도 특히 아랫동네.


미국에서 서던 지역이라고 부르면 보통 앨라바마, 아칸소, 조지아, 켄터키, 루이지애나, 테네시, 미시시피, 미주리, 노스 & 사우스 캐롤라이나 일대를 일컫는다.

화려하고 세련된 대도시, 다양한 양식의 건물이 장관을 이루는 마천루, 진보적인 문화, 최첨단의 패션과 기술이 미국을 상징하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미국의 서던 지역이 정말 미국스럽다고 여긴다.

멜팅 팟 미국임에도, 굳이 전통적인 무언가를 언급한다면 서던 지역의 문화가 아닐까 싶다.

특히 이 지역의 음악과 음식들은 정말 멋지다.

누구도 그 바이브를 따라갈 수 없다.


테네시의 녹진한 블루벨 아이스크림.

믹스 커피 같이 짙고 탁한 미시시피 강.

아칸소 어딘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들렀었다는 이발소.

멕시코 만을 둘러싼 동네들의 각양각색 검보와 손바닥 만한 생굴.
멤피스의 빌 스트릿에서 마시는 버번과 근교의 그레이스랜드(Graceland).

뉴올리언스의 프레젠테이션 홀에서 듣는 재즈, 버번 스트릿에서 보내는 마디 그라 축제, 치커리 커피와 핫소스.

애틀랜타에 즐비한 힙합 스튜디오.

잭슨빌의 립 요리.


그리고 바로 이 피치 코블러!


막 구워낸 피치 코블러를 먹는 법은 다음과 같다.

코블러를 크게 한 스쿱 떠서 접시에 담는다.

그 위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역시 크게 떠서 올린다.

코블러 속 잔열 덕분에 아이스크림이 살살 녹는다.

녹은 아이스크림은 접시 바닥에 고일 새도 없이 바닐라 향 진하게 풍기면서 곧 코블러의 크러스트에 고스란히 스며든다.

이때 포크로 혹은 숟가락으로 코블러 한 귀퉁이를 사사삭 베어내듯 담아 입안에 넣으면 된다.

그동안 달콤하면서 향긋한 냄새가 코블러의 온기를 타고 공간 전체를 메울 것이다.


이제 코블러와 아이스크림의 뭉쳐진 덩어리를 입 안에서 혀로 살살 으깨어 본다.

부드러워 씹을 것도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촉촉한 복숭아 과육, 달고 부드러우며 진한 맛이 일품인 바닐라 아이스크림, 고소하고 씹는 맛 가득한 크러스트, 넛맥과 시나몬 같은 향신료의 독특한 향이 어우러져 입 안에서 말 그대로 향연이 벌어진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금세 한 접시 비우고, 또 한 접시를 뜨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체리나 블루베리, 사과, 딸기를 넣고 코블러를 굽기도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복숭아를 넣은 피치 코블러가 최고다.

복숭아가 나지 않는 철에는 통조림 복숭아를 사용할 수도 있으나, 생과일 못 따라간다.

그러다 보니 이 피치 코블러는 한 해를 기다려야 먹을 수 있다.


더위를 견디며 불 앞에 서서 요리한 수고를,

한 해 견딘 값을,

톡톡히 갚아주는 행복한 디저트.

피치 코블러.


피치코블러, 2-3인분
복숭아 잼, 300ml


Authetic old-fashioned southern peach cobbler에서는 설탕과 버터를 듬뿍듬뿍 넣고, 비스킷도 밀가루로 만드는 게 정석이다. 물론 당연히 맛있다. 그러나 묵직한 맛과 식감에 먹고 나면 걱정되는 것도 사실. 그래서 밀가루를 쓰지 않고, 설탕은 많이 덜어내어 만들었다. 맛을 감할 수는 없으므로, 복숭아의 풍미에 초점을 맞추고, 밀가루 대신 오트밀과 견과류를 더해 씹는 맛을 더했다.

 

* 복숭아 조림(잼)

복숭아 600g, 중간 크기 세 개

꿀 1Ts(15ml)

흰 설탕(대체당 가능) 2Ts

넛맥 1/2Ts

시나몬 1/2Ts

소금 한 꼬집


오트밀 300ml

견과류 한 줌

버터 40g + 여분

복숭아. 예쁘다. 마트에서 껍질이 조금 마른 복숭아를 아주 싼 값에 사왔다.

세 개는 코블러로, 세 개는 잼으로.

복숭아를 한 입 크기보다는 크게 자른다.

껍질째 잘라도 씹는 맛이 있어서 좋다.

복숭아에 꿀 1Ts, 설탕 2Ts, 시나몬과 넛맥 1/2Ts씩, 소금 한 꼬집 넣고 조린다.

향신료가 없거나 싫으면 생략해도 좋다.

로즈매리를 넣어도 좋다.

10분가량 바글바글 끓이면서, 복숭아를 조린다.

복숭아가 약간 갈색으로 물든 면 불을 끈다.

달콤하게 조린 복숭아는 내열 용기에 담는다.

복숭아를 조리고 남은 물은 버리지 않고 냄비채 그대로 둔다.

여기에 오트밀 300ml을 넣고 섞는다. 오트밀이 복숭아 조린 물을 흡수하도록 한다.

이어서 차가운 버터 40g, 잘게 부순 견과류를 한 줌 넣고 크럼블같이 덩어리지게 한다.

오트밀 덩어리

요것만 먹어도 맛있다.

내열 용기에 담은 달콤하게 조린 복숭아 위에 오트밀 크럼블을 조금씩 떼어서 군데군데 얹는다.


에어프라이어 180도에서 20분 굽는다.

온도를 160도로 낮추고, 코블러 표면에 버터 10g가량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 군데군데 얹은 후 10분 더 굽는다.

에어프라이어를 끄고, 남은 잔열 속에 그냥 둔다.

피치 코블러 완성!

크게 한 스쿱 뜬 다음, 그 위에 그릭 요거트.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집에 없다.)

나머지 복숭아 세 개로는 잼 만들기.

방법은 똑같다. 복숭아에 꿀 1Ts, 설탕 2Ts, 시나몬과 넛맥 1/2Ts씩, 소금 한 꼬집 넣고 조린다. 조리는 동안 복숭아를 으깨준다.

걸쭉해지면 병에 담아 식힌다.

복숭아 잼도 한 병.

요즘 최애 브런치 메뉴. 데니쉬 식빵을 두툼하게 잘라 버터에 구운 다음, 복숭아 잼을 곁들여 먹는다. 진짜 너무너무 맛있다.

달콤, 향긋, 고소한 오감 만족의 피치 코블러.

먹고 나면 행복하다!


#코블러 #피치코블러 #복숭아 #복숭아파이 #복숭아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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