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7화.
시영은 생일파티 때 위급했던 연희를 구해줬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진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놀라워했다.
“멋지십니다. 야.. 우리 연희 부럽다. 이런 분하고는 일이 아닌 연애를 해야 하는데.”
“언니도 참, 지배인님은 결혼하셨어.”
“유부남이시라고? 아깝다. 그나저나 넌 이 은혜를 뭐로 갚을 거니?”
“그러게 어떻게 하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성진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아닙니다. 비록 근무 외 시간이었지만, 몰랐다면 모를까 당연한 거죠.”
“봤지? 언니! 우리 지배인님은 이런 분이셔. 일도 얼마나 잘하시고, 능력도 좋으신지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분이야.”
“와, 정말 멋지시네요. 결혼만 안 하셨다면 제가 다 욕심이 날 정돈 데요.”
“언니 됐거든. 미혼이시면 언니한테 차례가 갈 거 같아?”
“어머, 얘 봐라. 앙큼한 것 같으니라고.”
“호호호.”
“하하하.”
그렇게 세 사람의 즐거운 시간은 빠르게 흘러서 어느덧 새벽 세시가 다되어 가고 있었다.
“이런 너무 늦었습니다. 이제 가볼게요.”
성진이 일어나려 하자, 연희가 성진을 붙잡았다.
“지금 가셔도 몇 시간 못 자고 오픈하셔야 할 텐데, 여기서 주무세요. 그리고 저랑 같이 출근하세요.”
“안 돼요. 무슨 여자분들이 있는 곳에서..”
“어, 지배인님 저를 여자로 보시는 거예요?”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이때, 성진이 마음에 들었던 시영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회식 허락도 받으셨겠다. 어차피 늦는 건 아실 테고, 너무 늦어서 숙소에서 자고 출근한다고 하시면 될 것 같은데요. 보통 호텔리어들은 술 한잔하다 늦으면 숙소에서 자는 일이 비일비재하잖아요. 남들보다 출근이 빠르니까 어쩔 수 없으니..”
틀린 말도 아닐뿐더러 예의상하는 말이 아니라고 느껴지자, 자꾸 아내의 핑계만 대고 있는 자신이 쪼잔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거기에 술기운도 한몫을 했다.
“에잇 까짓 거 그럽시다.”
성진은 수화기를 들고 아내에게 회식이 늦게 끝나서 숙소에서 자고 아침에 바로 출근한다고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이제 그럼 지배인님. 술 사러 저랑 같이 가요.”
연희가 아쉬운 자리를 이어가기 위해서 술 사러 나갈 준비를 했다.
“그래요.”
두 사람이 편의점으로 향하던 길에 성진이 질문을 했다.
“그런데, 아까 나한테 할 말이란 게 뭐예요?”
성진의 질문에 연희는 발걸음을 멈추고 성진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저.. 지배인님 좋아해요.”
갑자기 고백을 받은 성진은 깜짝 놀랐다.
“네? 그게 무슨...”
“놀라셨어요? 내가 지배인님을 좋아한다고요.”
“아니, 저, 그게..”
“싫으세요?”
“그건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고..”
“싫으세요? 대답해 보세요.”
“싫지는 않지만, 저는..”
“그럼 됐어요.”
“연희 씨 저는..”
“유부남이라서 그런 거라면, 저는 괜찮아요. 그럼 된 거잖아요. 그렇죠?”
“아니, 그래도..”
그 순간,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연희가 발끝을 세우며 성진에게 기울어지는가 싶더니, 두 사람의 얼굴그림자는 하나가 되었다. 성진은 아무런 생각도 몸짓도 할 수가 없었다. 먼저 반응한 것은 생각이었다.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지만, 몸속에는 이미 많은 알코올이 장악을 한 상태였다. 이성보다는 본능이 우선이었으며, 그동안 자신을 소홀하게 대한 아내의 반항심에 대한 반작용이 먼저 솟구쳐 올랐다. 그 순간 성진은 연희의 몸을 끌어안았다. 왼손은 그녀의 어깨를 오른손은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그 순간 성진의 뺨엔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아무 생각하지 말아요. 날 솔직하게 대해주세요.”
성진은 연희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파고들었다. 하지만 연희는 그의 입김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두 사람은 어느새 서로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어때요?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
성진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기쁨도 아니고 해방도 아니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자신을 향해서 미소를 짓고 있는 한 여자에 대한 모습뿐이었다.
“나...”
“아무런 말하지 말아요.”
“난...”
“말하지 말라니까요!”
“.....”
“이제 알 것 같아요.”
“뭘?”
“성진 씨의 마음을..”
“내 마음? 나도 모르는 걸 어떻게..”
“난 느꼈어요. 당신의 외로움. 이제 내가 그 외로움을 채워줄게요.”
“....”
두 사람은 편의점으로 걸어갔고 맥주를 사고 나올 때까지, 아무런 대화가 없었다. 그저 조용히 손을 맞잡고 걸었다. 하지만 짧고도 조용한 그 시간 동안 많은 대화가 오고 간 듯했다. 그 침묵을 깬 사람은 연희였다.
“성진 씨, 내일 점심시간에 나 밥 사줘요.”
“밥?”
“응. 앞으로 점심시간은 우리 같이 해요.”
“그럼 다른 사람이 눈치챌 텐데..”
“가고 올 때만 조심하면 돼요. 기숙사 식당 뒤편으로 가다 보면 베네치아라는 레스토랑이 있어요. 점심시간 때 저는 왼쪽으로 성진 씨는 오른쪽으로 나가면 돼요. 간격을 두고서..”
“그런데 연희 씨 난..”
“그만! 걱정된다는 말 하려면 그만둬요. 우린 이제 시작이니까.”
“하지만 이건 불륜이에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할 거 에요.”
연희가 손에 든 비닐봉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내가 결혼하자 그랬나요? 아니면 날 책임져 달라고 했나요? 아니잖아요. 그냥 당신이 좋고 같이 있는 순간만큼 함께하자는 건데 그것도 힘들어요? 정말 그런 거 에요? 정말 그렇다면 실망인데요.”
“그런 게 아니고..”
“가여운 사람..”
“.....”
“이리 와요.”
성진이 멈칫거리자 그녀가 성진의 팔을 잡아당겼다. 성진은 그녀의 품에 안겼다. 체구는 성진보다 작았지만 그녀의 품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부드럽게 감싸 안은 연희는 속삭이듯 말했다. “
“괜찮아요. 난 성진 씨의 휴식 같은 존재가 될게요. 나와 같이 있을 때는 아무런 걱정하지 말아요. 알았죠?”
성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나에게 와줘서.”
“나도 고마워요.”
성진은 이제 더 이상 이성만으로는 감정조절이 불가능했다. 그녀를 끌어안고 다시 뜨겁게 입을 맞췄다. 성진은 더 이상 부담감이나 죄책감이 없었다. 연희도 성진을 오롯이 받아들였다. 성진의 몸짓은 그동안 눌려왔던 무언가를 해갈하려는 듯 다소 거칠었지만, 그런 몸부림을 치유하려는 듯 그녀가 부드럽게 보듬어 주었다. 성진은 그녀의 손길에 위로와 치유됨을 느꼈다. 성진은 새로운 남자로 다시 태어난 듯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