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노래 불러서 상 받았다
우리 아빠가 좋아하시던 트로트
작년 여름쯤 엄마가 택배를 보내셨다
시골집 밭에서 이것저것 키우신 농작물들을 챙겨서 보내
주셨는데 택배 박스를 열어보니 택배 박스 속에 봉지에 담겨있는
하얀색 작은 통에 들어있는 세탁세제 두통과 주방세제 한통 그리고 치약 몇 개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엄마한테 전화드려서 여쭤 보니
"느그(너희 :전라도 사투리) 아빠가 복지관 노래자랑에서 노래 불러서 상 탔단다"
"1등 했단다 하하하"
아빠가 다니셨던 복지관에서 어르신들 장기자랑을 하셨는데
아빠가 노래 부르셔서 1등을 하셨다는 것이다
아빠는 예전부터 트로트 음악을 좋아하셨다
시골집에서 농사 지으시며 적적함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트로트 가사에 흥얼흥얼 따라 부르시며 외로움을 달래 시기도 하셨다
친정엄마는 아빠와 함께 농사일을 하시면서도
계속 식당일을 다니셨고 지금도 여전히 다니신다
산골짜기 동네에서 아래 동네까지 걸어서 내려오면
거의 30~40분 정도 이것도 빠른 걸음으로 걸었을 때
시간이다 이렇게 힘든 길을 매일같이 걸어 다니시며
고된 식당일을 하시는 게 너무 안쓰럽기도 한데
엄마는 본인이 할 수 있는데 까지는 일 하고 싶으시다고
하니 자식들이 말려도 소용이 없으시다
그냥 농사일만 하시기에도 힘드신데 늘 마음이 쓰인다
두 분은 보통 새벽 일찍 일어나셔서 오전 7시 30분쯤
까지 아빠와 함께 농사일을 하시고
오전 8시쯤 되면 엄마는 식당으로 출근 준비를 하셔서
일을 나가시고 아빠는 엄마가 저녁 8시 30분에서 9시쯤 퇴근 시간이 될 때까지 집에서 찬찬히 농사일
둘러보시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그 적막함을 본인이 좋아하시는 트로트 음악을 틀으시고 따라 부르시며
지내시기도 하셨다
그러던 작년 봄쯤 동네에서 가까운 복지관에 다니기
시작하셨다
복지관은 셋째 남동생이 신경 써드리고 여기저기
다니며 알아보고 하며 신청해드렸는데
잘 되어서 복지관에 다니 실수 있게 되셨다
또 복지관 원장 선생님과 일하시는 선생님들께서
어르신들께 정말 가족처럼 얼마나 잘 챙겨주시는지
너무너무 좋은 분들이시다
아빠도 복지관 다니시면서 너무 즐거워하셨다
작년 여름쯤 아빠가 다니시는 복지관에서
어르신들 장기자랑을 하셨던 것이다
"아빠 복지관에서 노래자랑해서 1등 하셔서
상품 타셨다고 엄마가 그러시던데요"
"그래 노래 불러서 아빠 1등 했다 아빠 상 받았다"
"상 받으신 거 엄마 아빠 쓰시지 뭐하러 보냈어요"
"느그들(너희들:전라도 사투리) 써라
엄마아빠는 집에 쓸 것 많이있다"
"알았어요 잘 쓸게요 감사해요"
그렇게 아빠가 복지관에서 장기자랑하셔서 받으신
상품들을(세탁세제 주방세제 치약) 우리 집에 보내 주셔서 알뜰히 잘 사용했다
아빠는 몇 년 전쯤 크게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하셨고
치료를 받으셨다
그리고 그 후로 몸이 많이 좋아지셨서 잘 지내고
계셨는데 또 몇 번 정도 아프셨고 다행히 잘 치료받으셔서 몸이 많이 좋아지셨다 웬만한 농사일은
거뜬히 해내셨다
몇십 년 농사일을 해 오셨기에 그게 몸에 베이셔서
그러신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작년 가을쯤 아빠는 몸이 많이 쇠약해지기
시작하셨다
입맛도 없다 하시고 식사도 거르시는 일이 많다고 하셨다 너무 걱정이 되었다
그러던 작년 어느 가을날 한번 아프셨고
병원 다니시며 잘 치료받으셔서 잘 지나갔는데
작년 12월 중순쯤에 예고 없이 아빠는 몸이 너무 많이
아프셔서 겨울 한밤중에 병원에 입원하게 되셨다
다행히 그나마 친정 집에서 가까운
한 시간 거리에 살고 있는
결혼한 남동생 부부가 살고 있어서 아버지를 잘 챙겨드릴 수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서 직계가족도 면회가 안 되는
상황이었고 중환자실에 입원하셔서 더더욱 모든 게
힘든 상황이었다
아빠는 다행히 병원에서 치료를 잘 받으시고
몇 번에 고비가 있었지만 그 고비도 잘 넘기셨다
제발 우리 아빠 좀 살려주세요 추운 겨울을 잘 이겨내게
해 주세요 기적이 일어나게 해주세요
따뜻한 봄이 오면 예쁜 봄꽃들 아빠가 매실밭에
매실나무에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날 때쯤이면
전화하셔서 "매화꽃이 천지에 피었다야 온 동네
매화향이 가득하다"
라며 좋아하시는데 우리 아빠 따뜻한 봄도 보실 수 있게 해 주세요 라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계속 기도를 하는 것 밖에는 해드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기적처럼 몇 번에 고비를 잘 넘기셨는데
올해 1월 23일에 아빠는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
그런데 너무 다행스럽게도 아빠가 돌아가시던 날부터
3일 동안 아빠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그 며칠 동안
그렇게 매섭던 한파가 사라지고 따뜻한 봄날처럼
햇살도 너무너무 따스하고 정말 봄 날씨처럼 따뜻했다
사람들이 모두 아빠 좋은 날에 돌아가셨다고 하시며
복 받으셨다고 좋은 데로 가셨을 거라고 말씀들을
하시기도 하셨다
정말 봄날처럼 눈부시게 따뜻한 겨울날에 돌아가신
아빠가 문득문득 너무 보고 싶은 날에는 설거지를
하다가도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리기도 했다
따뜻한 봄날이 되었을 때는 더더욱 그러했다
아빠 돌아가신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였을까
내 꿈속에 나오신 아빠가 말끔하게 단정하게
단장하신 모습으로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병실 침대에 기대어 앉으셔서 맛있게 식사를 하시며
"아이고 맛있다 영 맛있다야"
"아빠 그렇게 맛있어요"
"영 맛있다야"
내 꿈속에서
아빠가 드시고 계시는 것은
그냥 멀건 흰 죽이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따뜻한 식사 한번 제대로
못 드시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너무 짠하고 늘 마음이
쓰였었는데 그런 나보고 아빠 잘 지내고 있다며
내 꿈속에 나오셔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후로도 한번 정도 내 꿈속에 나오시기는 했는데
그다음부터는 도무지 내 꿈속에 나오지를 안으신다
그렇게 트로트를 좋아하셨던 아빠는 특히 목포의 눈물
이라는 노래를 즐겨 부르셨다
가수 남진 나훈아 님에 노래를 좋아하기도 하셨다
아빠가 복지관 장기자랑에서 부르셨던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는 모르겠지만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가 생각이 난다
목포의 눈물 노래 가사 중에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파고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시 아롱 젓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목포의 눈물 노래 가사가 애절하다
너무 서글프다
가끔씩 티브이를 틀면 우연히 트로트 노래를 하는
가수가 나오면 아빠 생각이 많이 나기도 한다
아빠가 다니셨던 복지관 장기자랑에서 상 받아서
보내주셨던 그 세탁세제는 진작에 다 사용했지만
지금도 버리지 못하고 계속 그 통에다가 리필하며 사용하고 있다
처음 보내 주셨을 때도 얼마나 아껴 썼는지 모른다
그저 조그마한 세제통이기는 해도
그 세제통을 볼 때마다
"아빠 노래 불러서 상 탔다"
라며 기뻐하시며 전화기 너머로
행복해하셨던 아빠의 그 목소리를 기억하고
추억하고 싶어서 꼭 고이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아빠는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늘 자식들을 사랑하셨던
그 깊으신 마음을 아직 다 헤아리지는 못 하지만
따뜻하셨던 그 마음 꼭 잊지 않을게요
아직도 아빠 생각하면 혼자서 훌쩍훌쩍 눈물이 나와요
너무 많이 그리운 우리 아빠 늘 뭐든지 척척박사 임 박사였던 우리 아빠 많이 그리워요
아빠 살아생전에 못 해드렸던 말 아빠 큰 딸내미가 많이 많이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