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종종 Jul 09. 2024

시시하다 못해 초라한 처음

그래도 처음은 매일 있다


ⓒ종종

대학교 2학년 당시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하신 말 중에 기억나는 말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통감하는 것인데, 젊은 시절에 이미 느낄 수 있는 경험과 감정들을 대부분 겪었고 나는 더 이상 인생에서 완전히 새롭게 느낄 감정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미 성공의 길을 걸었고 앞으로도 반짝이는 길만 걸을 것 같은 교수님 입에서 나온 말 치고는 너무 회의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기에 고게가 끄덕여졌다. 온갖 감정이 몰아치는 사춘기를 지나고 대학에 왔는데 막상 재미도 없고 미래는 깜깜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20대가 지나고 어느새 30대로 들어서면서 새로운 사건은 전보다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40대가 되면 더 줄어드는 것일까? 나는 불안해졌다. 그러다가 최근 에세이 수업을 들었는데 그곳에서 생각의 변화가 찾아왔다. 선생님이 오늘의 처음을 적어 보라고 하신 것이다. 아주 사소하더라도 매일 일어나는 처음은 분명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최근 1주일 동안에 처음 한 일을 생각해 봤다. 신기하게도 오늘의 처음은 진짜 매일매일 있었다. 다만 아이들이 경험하는 처음만큼 드라마틱 하고 엄청나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롯데리아에서 새로 나온 신메뉴 오징어 버거를 먹었다든지 맥주 6개 번들을 처음 사봤다든지 하는 일이었다. 시시하다 못해 초라한 처음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나는 이 초라한 처음이라도 기록해 보기로 했다. 어쩌면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 속에서 윌리를 찾는 것 같은 기분이지만 그래도 '진짜 윌리'를 찾듯 쳇바퀴 돌듯 비슷한 일상에서 '진짜 내 인생'을 찾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디 내가 기록하는 처음들이 너무 소소해서 놀라지 마시길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