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아침잠이 많은 아내와 매일 늦은 밤까지 노느라 지친 딸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안방 욕실에서 나는 샤워와 전기면도기 소리까지는 그렇다 쳐도 헤어드라이어 소리에는 뒤척이기라도 할 법한데 말이다.
가장이 출근하는데 눈도 못 뜨고 있는 게 말이 돼? 현관문까지 나와 인사는 못할 망정!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가끔은 서운할 때가 있었는데 나중에는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아침 조심조심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하면 그건 그것대로 곤욕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젖은 머리까지 말리고 나서 안방을 빠져나올 땐 늘 주의해서 방문을 닫는다. 비록 깊은 잠에 빠져서 있다고 한들 혹시나 아이가 잠에서 깰지도 모르니까.
02.
정체는 '계절성 우울증'이었다. 계절이 가을로 접어드는 무렵마다 내가 말 못 할 개인적인 부침을 겪는 이유 말이다. 수년 동안 혼자 힘들어하다가 계절성 우울증의 징후가 내 증상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고칠 순 없더라도 원인을 알고 나면 그래도 좀 괜찮아지는 부분이 있는 법이다.
가령 출근하기 위해 샤워를 할 때부터 '오늘은 영 자신이 없는데'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영문모를 의기소침한 기분이 나를 온통 사로잡는 것이다. 이대로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서 영영 나오고 싶지 않은 심정이다.
그러면서도 출근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 다행스럽게 느껴지곤 했다. 왜냐하면 억지로 출근조차 하지 않는다면 정말 나는 몇 날 며칠이고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처음 그런 기분이 느껴졌을 때에는 저항할 수 없는 무력감에 다소 절망감도 느꼈었지만 지금은 적응했다. 유난히 마음이 착 가라앉는 날이면, '또 왔구나, 계정설우울증! 이건 모두 기분 탓일 뿐이야. 파이팅 하자!'하고 일부러 더 힘을 내며 집을 나서곤 했다.
그날도 그런 기분이 들었던 날이다. 애써 우울감을 떨치며 안방을 빠져나오던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이불 밖으로 살짝 나온 딸아이의 발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딸아이의 작은 발가락을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살며시 잡아보았다. 아빠가 나갈 때까지 눈도 못 뜨는 녀석이 이건 간지러웠는지 발가락을 꼼지락 거린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급속 충전!'
그렇게 약 3~5초를 딸의 발가락을 만지작거리고는 집을 나섰다. 그러자 출근할 때의 기분이 전혀 다른 게 느껴졌다.
04.
어쩌면 그때 아빠도 힘들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기분 좋게 출근하던 차 안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어릴 적, 아버지도 자주 그러셨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의 딸아이와 비슷한 나이였을 무렵, 아버지가 잘 자고 있는 나의 팔과 다리를 주물러대서 잠에서 깬 적이 많았다. 내가 잠에서 깨기라도 하면 아빠는 자신이 깨워놓고는 '우리 서툰, 일어났어?' 하시며 더 기뻐했다. 지금은 내가 딸에게 그러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종종 그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나에게도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며 살라고 하셨었다. 확실히 아버지는 강한 분이셨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라 한들 어찌 세상이 무섭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보는 것이겠지.
모르긴 해도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두려웠으리라.
그런 때 아버지도 나로 인해 힘을 받으셨으리라 믿고 싶다. 지금은 나는 변변찮은 신세가 되어 딸로부터 충전을 받고 있는 입장이지만 말이다.
비단 우울증이 아니라도 출근이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땐 남의 다리를 만져보자. 만약 아이가 없다면 자고 있는 아내의 발끝, 손끝이라도 좋다. 가족의 온기만큼 강력한 에너지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고 나면 세상에 무서운 게 없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