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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기정 Mar 15. 2024

[에세이] "안 쓸 거니까 n만 원만 드릴게요"ep.2


(ep.1에서 이어집니다)


기존 견적 값을 지불하기 어렵다니, 솔직히 많이 당황스러웠다. 결제만을 앞둔 상황에서 앞과 같은 말을 들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의뢰자가 그렇다는데 어떡하겠는가. 생각해 보면 의뢰자도 악의로 저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니까. 나는 감정적으로 나서지 않기로 했다. 나의 당황과 억울을 표출해서 의뢰자와 싸워봤자 좋은 게 없으니까. 서비스를 운영하며 판매하는 이상, 나의 서비스를 구매한 고객의 리뷰는 앞으로의 서비스 운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성적인 자세가 현실을 바꾸지는 못했다. 침착하게 의뢰자에게 되묻기를 반복해도 대답은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작업 한 시나리오가 쓰이지 않게 되었으니, 결국 5만 원만 결제하겠다는 것. 그렇게 기존 견적 금액인 20만 원은 쓰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5만 원이 되었다.


기존 견적 금액으로는 결제가 어렵다는 연락을 받고서 바뀐 견적 금액인 5만 원 결제가 끝날 때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나의 감정과 불만은 철저히 자제해야 했다. 앞서 말했던 대로 고객의 리뷰는 나의 서비스 운영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니까. 혹여 내가 감정적으로 나선다면 고객의 별점은 당연하게도 낮아질 것이었다. 나는 이를 알았다. 그래서 최소한의 갈등으로 최대한 부드럽게 일을 해결해보고자 했던 것인데, 이런 나의 노력마저도 물거품이 되었다.


그 이유는 의뢰자가 남긴 리뷰 때문이었는데, 총 5점 만점에 3.3점을 나타내는 별점과 "수고하셨습니다...."라는 힘 빠지는 한 줄 평가가 남겨졌기 때문이었다. 이 리뷰는 내게 가히 충격적이었는데, 그때 당시의 나는 의뢰자가 리뷰라도 잘 써줄 줄 알았던 터이니 그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기존 견적은 갈아엎고 그의 절반도 안 되는 최종 결제금액을 받아준 나의 노력과 마음을 알아준다면, 당연히 의뢰자 역시 리뷰를 좋게 써줄 줄만 알았던 것이다.


기존 견적이 결제 직전에 변경되고, 최선을 다 했음에도 깎인 별점을 받은 것은 1년 가까이 서비스를 운영해 온 나 역시 처음인 상황이었다. 나의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이번 일을 공정 거래 위원회에 넘기라고 하거나 거래 사이트를 통해 신고를 하라는 등 조언을 해주었지만, 나는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의뢰자도 악의로 결제 금액을 바꾼 건 아니니까. 더욱이 이번 일로 인해서 나의 에너지와 집중력을 계속해서 빼앗기는 게 싫었다. 악몽을 꿨다 치고 넘기려고 했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이렇게 쉽게 말하지만, 물론 쉽지 않았다. 받지 못한 돈이 눈앞에 아른거리기도 했고, 이 일을 지나고 만나는 새로운 의뢰자들을 이유 없이 불신하기도 했다. 더욱이 의뢰자가 결제를 앞두고 연락을 받지 않으면 그 불신과 불안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기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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