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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기정 Mar 29. 2024

[에세이] "프리랜서 작가는 이런 일을 합니다"ep.4

시나리오 작업 ep.4


(ep.3에서 이어집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시나리오 작업 ep는 ep.3에서 끝나야 했는데, 분량 조절에 거하게 실패하는 바람에 이렇게 ep.4를 작성하고 있다. 그만큼 이번 에세이를 진심으로, 열정적으로 쓰고 있다고 봐주면 고맙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내가 이렇게까지 이번 에세이를 열심히 쓸 줄 몰랐다. 여태껏 이런 이야기를 풀어낼 기회가 없어서일까, 막힌 말문이 터지는 것처럼 쓰고 있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ep.3에서 이어서 설명을 해보자면, 설득력을 만드는 이 과정은 다소 지루하다고 할 수 있다. 고뇌 끝에 만들어져 결정된 이야기를 수차례 반복해 읽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쉽게 질리고 지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이미 본 적이 있는 영화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는 것과 같아서, 여태껏 높게 유지되던 집중력은 이 과정에서 뚝-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과정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이유는, 이 과정에서 얼마나 집중하고 노력했는지에 따라 설득력을 가진 최종 이야기의 퀄리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과정을 최대한 상세하고 치밀하게 할수록 고객의 만족도 역시 올라간다. 그러니 높은 작품성을 위해서, 고객의 만족을 위해서 뺄 수 없는 과정인 것이다.


이토록 중요한 과정은 쓰인 이야기의 전체 줄거리가 길고, 등장하는 인물이 많을수록 소요되는 시간 역시 따라서 커진다. 더욱이 이렇게 질문과 대답을 통해 만들어진 설득력들은 서로 떨어져 움직이는 독립적인 게 아니라서,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모든 설득력 줄기들이 서로 잘 연결시켜야 한다. 그러니 줄기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서술로만 설명을 하고자 하니 내가 가진 생각과 방법을 전하는데 한계가 느껴진다. 그러니 이쯤에서 실제로 내가 이 방식을 통해 작성했던 소설을 예시로 들면서 이해를 해보도록 하자. 내가 썼던 [장편 소설집]에 해당하는 [우리]를 예가 될 것이다. ep에서 설명하는 건 시나리오지만 예시를 소설로 드는 이유는, 둘 다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니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우리]를 읽어보지 않은 이들을 위해 소설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를 하자면, 서로 어정쩡하게 알고 있는 지인 관계인 3명이 한 밀실 안에서 깨어나게 되고, 셋 중 가장 죗값이 무거운 이가 문을 열어야 다 같이 탈출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만약에 소개를 듣고 호기심이 생겼다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아래부터는 [우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설명이 이어질 터이니, 혹여나 스포일러 당하는 게 싫다면 나의 프로필에서 작품을 클릭해 [우리]를 찾아서 먼저 보고 오길 바란다.


그럼, [우리]의 등장인물을 먼저 보자.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크게 3명으로, 신수현, 황여울, 박 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물들이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각 인물의 행동과 판단에 대한 왜?라는 질문이 생겼을 것이고, 거기에 대답하는 설정과 배경도 역시 있을 것이다. 이렇게 1차적으로 인물이 가지는 설득력 줄기가 생겨났다. 즉, 그렇게 주인공 3명에 따라 3개의 큰 인물 줄기가 생긴 것이다. 그러면 이에 따라 각 인물들의 배경, 가치관, 우선순위 등이 나타났을 것이고, 인물들 간에 관계도 역시 생겼을 것이다.


자 그럼 여기서 인물에 대한 설득력을 넘어서 인물들이 엮이고 엉키는 사건과 사고에 대한 설득력을 생각해 보자. 작품 상에서 박 현의 친구가 몰던 차는 황여울의 코치와 교통사고를 내 코치를 죽게 한다. 그리고 박 현은 이 사건으로 큰 죄책감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 이 사건에 대한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왜 박 현이 탄 차는 황여울의 코치를 죽여버린 걸까?


정답은 쉽다. 박 현이 끝까지 신수현으로부터 황여울을 지키는 이유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박 현은 자신 때문에 사격부 코치의 부재를 맞이한 황여울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고, 이를 용서받기 위해 황여울이 당하는 공격을 대신 받아주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작품 상에서 박 현이 왜 황여울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는지, 왜 황여울을 지키는지를 보여주는 사건 설득력 줄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인물에 대한 큰 설득력 줄기들이 엮일 수 있는 세부적인 사건과 사고에 대한 설득력 줄기를 만들 수 있다. 다만 이 줄기가 인물 줄기와 다른 점은, 이야기를 접할 이에게 직접적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만이 인물들 간의 관계도를 전부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관계도와 이야기 전체의 연관성을 조금씩 풀어 이야기를 접하는 이들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하면 떡밥이나 설계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구분되는 두 줄기 중 인물 줄기는 접할 이에게 비교적 직접적으로 다가가 인물 자체에 대한 "이해"를 주는데 집중한다고 보면, 이런 세부적인 줄기들은 인물과 인물이 어떻게 이어지고, 어떤 인식으로 서로를 바라보는지 등의 부가적인 것들에 더 집중한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인물 줄기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핵심 기차, 그리고 사건 사고 줄기는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기 위한 철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위 두 가지 줄기는 서로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띤다. 인물에 대한 설득력 줄기만 강하게 형성되어 있으면 이야기가 풍부하고 치밀하게 전개되지 못한다. 그 반대로 사건 사고 설득력 줄기만 강하게 만들어져 있다면 이야기를 접하는 이가 사건과 사고를 보며 인물과 사건의 연관 정도를 이해를 하지 못하게 된다. 두 가지 중 어느 한 곳으로 너무 치우치지 않게 주의를 해야 함은 물론, 이야기를 접하는 이가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을 정도까지만 줄기를 만들고 엮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래도 작가는 이야기를 만들고, 보여주며 반응을 기다리는 사람이니까.


(ep.5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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