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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기정 Apr 23. 2024

[산문집] 시기에 맞는 방황은 모험


선택과 집중이 아닌 외면과 포기. 야, 내 나이는 이제 스물이야. 작년까지만 해도 교복을 입고 학교 급식을 먹던 나이라고. 통장에는 3만 원만 있어도 많은 거였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먹고 싶은 과자를 고민 없이 집어들 수 있으면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을 거라고 느꼈었어. 그저 그런,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아이였지. 근데 1년도 지나지 않아 이렇게 됐어. 또 자랑하는 거냐고? 무슨, 나는 후회를 하고 있는 거야. 남들이 보기에 빛 좋은 개살구고 성공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배우지도 않은 비 전문가 살구일 뿐이고, 성공이라는 태양에 다가가기에 내 우주선은 처참할 정도로 빈약해. 무슨 말인지 알아? 시기에 맞는 방황은 모험이야. 다시, 시기에 맞는 방황은 모험이라고.


-라는 말을 끝으로 너는 떠났다. 멍하니 떠나는 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어느새 정신을 차리니 너는 내 시야에 없었다. 문득 이곳에 서있는 내가 이 위치에 남은 것이 아닌 버려져있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발을 옮겼다. 네가 향한 곳의 정반대로 말이다. 자꾸만 떠오르는 너의 말들이 나를 괴롭혀, 때때로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털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효과는 없었다. 묻은 것이 아니라 박힌 것이었으니까. 깊게 박힌 가시를 품고 한참을 걸었다.


계속해서 느껴지는 찔리는 고통이 멎었던 건 자동차 브레이크 소리를 듣고서였다. 사고를 막기 위해 뻗은 발에 따른, 귀를 찢는 듯한 높고 날카로운 소리. 나는 멈춰 섰다. 문득 너의 상태가 궁금해진 나는 뒤돌아 또 한참을 걸었다. 너가 향한 곳을 향해서 말이다. 찌그러진 자동차 범퍼와 반쯤 뭉개진 반죽을 지나치고도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런 나의 발자국은 붉은색이었다. 페인트를 쏟고 그 위를 걸어지나가는 것처럼.


문득 쉬지 않고 길을 걷는 내가 어디론가 향하는 게 아니라 어디로부터 도망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발을 옮겼다. 브레이크 소리를 들었던 곳으로 말이다. 그 길에서 다시 한번 찌그러진 자동차를 지나쳤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반죽은 찾을 수 없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애초에 사람도 아니었을 테지, 기계에 가까웠으니까.” 싶었다. 그게 마음이 편했다. 그래. 너는 그런 말들을 자주 했다. 기억에 남는 말은, “시기에 맞는 방황은 모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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