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들이 사는 나라 여행자들을 위한 안내서
우리 집에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하나 살고 있다. 그 괴물은 자신을 ‘촉수 곰’이라고 소개했다. 티라노사우르스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갖고 있고 문어처럼 촉수가 있으며 곰처럼 우렁찬 목소리로 위협한다. 두 팔을 힘껏 들어 올려 사나운 표정으로 으르렁 거리는 그 괴물은 내 딸이다. 작가 모리스 샌닥은 이런 꼬마괴물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자신의 그림책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 옮겨 놓았다. 많은 부모들에게 꼬리 달린 하얀색 늑대 의상을 입고서 사나운 표정으로 말썽을 피우는 ‘맥스’의 모습은 익숙한 광경일 테다. 나 역시 “엇, 저건… 완전 내 딸이잖아!”라고 생각했으니까(내 딸은 오렌지색 공룡의상을 애용한다). 이 그림책은 종종 괴물들이 사는 나라를 여행하는 아이를 둔 부모들이 자녀의 감정과 욕구, 본능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안내서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의 괴물들은 결코 헤치지 않을 테니 안심하고 귀엽게 바라봐주길.
1963년에 출간된 이후 약 2,000만 부가 팔린 <Where the Wild Things are,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미국 전 오바마대통령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책으로 그가 아이들에게 직접 이 책을 읽어주는 영상을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다. 그림책 읽어주는 대통령이라니. 나는 어른들이 직접 나서서 그림책을 향한 존경과 애착을 보여주는 이런 문화가 미국 어린이 독자를 응원하고 지탱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깟 유치한 그림책, 애들이나 보는 거라고 치부하지 않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풍족하게 채워준 상상의 동력으로 받아들이는 마음. 그 어린 시절의 유연하고 열려있는 마음을 잃지 않고 유지하는 것은 어른으로 살아가는데 분명 도움이 된다. 가령 괴물을 만났을 때, 괴물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는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괴물이 아닌 멀쩡해 보이는 어른이라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데는 어느 정도 상상력이 필요하고, 그림책은 우리가 유연하게 상상하도록 다정하게 격려한다.
망치로 벽에 못을 박고, 포크로 강아지를 괴롭히는 주인공 맥스는 누가 봐도 금쪽이로 오해할만하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엄마는 ‘괴물딱지 같은 녀석’이라고 혼내며 저녁도 주지 않고 아이를 방에 가둔다. 방안에 혼자 남은 맥스의 분노, 화, 절망감, 짜증과 같은 감정의 크기는 그림의 크기만큼 서서히 팽창한다. 감정을 물리적 크기로 보여주는 것은 그림책이 어린이 독자들을 자신의 세계로 데려가는 매혹적인 방법 중 하나다. 이제 독자는 맥스의 눈과 감정으로 그림책을 모험한다. 배를 타고 도착한 괴물들의 나라에서 무시무시한 괴물들의 왕이 되어 그들을 통제하고 명령하면서. 어른들이 자신에게 늘 그렇게 대하듯이.
머리에는 뿔이 있고 뾰족한 손톱과 발톱을 갖고 있는 커다란 괴물들과 춤추고 뛰어놀고 올라타며 마음껏 소동을 벌이는 맥스를 보며 아이들은 대리만족을 느낀다. 이제 왕이 된 맥스를 통해 강한 존재(어른) 보다 더 강해지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킨다. 아이들의 하루는 대부분 뭘 먹을지, 뭘 할지, 어디에 갈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어른들에게 통제당하는 입장이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괴물은 어쩌면 우리 어른들 일지 모르겠다.
우리말 ‘괴물’로 번역된 영어 ‘와일드 띵 Wild Thing’은 사실 작가 모리스 샌닥의 어머니가 사용하던 ‘활동적인 아이’를 뜻하는 이디쉬 어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디쉬 어는 유럽의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다.) 그러니까 괴물이라는 단어의 이면에는 활동적인 아이라는 발랄하고 무해한 의미가 숨겨있는 것이다. 우리는 고분고분 얌전하고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를 원한다. 그래서 분노, 장난, 호기심, 자유로움과 같은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아이를 마치 괴물처럼 받아들인다. 그러나 소아정신과 서천석 박사는 괴물을 아이 내면의 생명력이라고 설명했다.
괴물은 아이 내면의 충동과 공격성이다. 부모가 아이의 내면에 있는 괴물을 억압할 때 아이는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비록 위험하지만 그것이 아이의 생명력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괴물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기 위해선 우선 괴물의 시기를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의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 서천석>
아이들은 감정 조절에 미숙하기에 감정적 밸런스를 되찾기 위해서는 울고불고, 방방 뛰는 물리적인 소동이 필요하다. 이것을 어른들이 행동교정이라는 명목으로 억압한다면 아이는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고 평온을 되찾아올 감정적 연습의 기회를 빼앗겨버린다. 괴물들의 나라에서 모험을 마치고 노곤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맥스처럼, 아이들은 자신의 복잡하고 거대한 감정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어른들이 기다려준다면 말이다.
‘와일드 띵 Wild Thing’ 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가 자세의 이름이기도 하다. 가슴, 척추, 어깨를 시원하게 열면서 온몸을 쫘악 펼친다. 내면의 에너지와 감정을 발산하게 해주는 자세이다.
우리는 마음속 괴물을 억압하기보다는 적절하게 발산하는 방법을 각자 배워가면서 어른이 된다.
그러한 어른들은 아이가 촉수곰 괴물 흉내를 내며 날뛸 때 너그럽고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Where the Wild Things are, Maurice Sendak
괴물들이 사는 나라, 강무홍 번역, 시공주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