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선물로 지인에게서 받은 제주 갈치, 냉동실에 넣어둔 채 2주가 지나갔어요. 오다가다 남편은,
"갈치 잘 있어?"
라고 묻습니다. 냉동실에 있는 갈치가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당연히 잘 있겠죠. 그 말인즉, 언제쯤 갈치가 밥상에 올라오느냐는 말을 돌려한 거라는 것쯤은 이제 굳이 되묻지 않아도 알 수 있지만,
"글쎄... 아마도?"
라고 답해봅니다.
엄마가 나이 들며 왜 그리 주방과 멀어져 갔는지 알 것만 같아요. 어쩌면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는 밀키트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다듬고 씻고 써는 과정들이 사라지고, 물만 넣어 끓이기만 해도 밥 한 끼 해결은 너끈하잖아요? 더군다나 음식물 쓰레기도 줄일 수 있으니 일석 이조이기도 하고요.
"난, 세상에 맛있는 것들이 많지만 당신이 해준 밥이 제일 맛있어."
라는 남편의 말에 '알아주니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삐딱선을 타고 싶어 져요.
"그 거짓말 참말이야? 솔직히 말해야지... ㅎㅎ 세상의 맛있는 것들이 더 맛있겠지..."
"티 났어? 내가 생각해도 좀 그렇다... 그렇지... 맛있는 것들이 많지..."
그래도 고마웠습니다. 가족들이 맛있다! 맛있다! 말해주고 잘 먹으면 그것만큼 힘이 나는 일도 없으니까요. 예쁜 말을 해 줬으니, 냉동실에서 잠자고 있는 갈치를 소환해 볼까요?
갈치는 구워도 튀겨도 졸여도 맛있잖아요. 오늘은 갈치로 뚝딱 간단하게 조림을 해 볼 거예요.
'매콤 갈치조림' 만들기
1. 양파와 대파는 어슷 썰고, 무는 큼직하게 나박 썰어서 냄비 밑에 깔아 둔 뒤 손질된 갈치를 얹어줍니다.
2. 닭볶음탕 소스를 한 두 국자 끼얹어줍니다. (조림의 마지막 단계에서 간을 본 뒤 추가)
3. 고춧가루 1~2스푼, 마늘 한 스푼, 생강술(미림) 2스푼, 설탕 한 스푼을 넣습니다.
4. 동전육수 1~2알, 쌀뜨물(맹물)을 갈치가 자박하게 잠길 정도로 부어줍니다.
5. 뚜껑을 닫고 한소끔 끓여준 뒤 부족한 간을, 닭볶음탕 소스 또는 멸치액젓으로 맞춰줍니다.
6. 무가 말캉하게 익으면 완성!!
메인인 갈치보다, 무를 더 좋아해서 듬뿍 깔았더니 시원하고 칼칼한 맛이 일품입니다. 때로는 감자나 고구마, 단호박 등을 깔아주기도 하는데 그 역시 맛깔나죠. 채소에서 나오는 단맛과 감칠맛은 설탕으로 낸 단맛과 사뭇 다릅니다. 아이들은 갈치에 열광하지만, 전 역시 조림에 곁든 채소가 더 맛나네요.
남편의 애교스러운 투정으로 시작된 갈치조림이지만 막상 해 놓고 나서는 제가 거의 다 먹은 것 같아요. 이래서 한 끼 분량만 만들어야 하는데 하다 보면 양이 늘어나 늘 뒤처리는 제 담당이 됩니다. 넉넉하게 만들어 두 세끼 먹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