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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인 Feb 26. 2024

차에서 1박 2일

엇박자 부부의 한국 100대 명산 도전기

한국 100대 명산 도전을 하다 보면 전국 팔도를 돌아다닌다. 땅 끝 해남에 있는 달마산부터 강원도 설악산까지 차로 방방곡곡 달린다. 등산을 안 했다면 평생 가보지 않을 지역을 볼 수가 있어 좋지만 가장 큰 단점은 ‘기름 값이 많이 나오는 점’이다.

 루루와 나는 보통 당일치기로 산을 다녀오는데 기름값만 최소 10만 원이 나온다. 주말마다 등산을 가기 때문에 한 달에 적어도 40만 원 이상이 교통비로 지출되는 셈이다.


 한번은 큰일 날뻔한 적이 있었다. 보령 오서산에 갔다가 오후 6시 전에 하산했는데 가는 곳마다 주유소가 문을 닫았다. 언제 차가 멈출지 모른다는 불안함 속에 근처 주유소를 다 돌았다. 간신히 아직 문을 연 주요소를 찾았다.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천천히 걸어 나오는 모습에 모든 걱정이 날아가고 마음이 편해졌다. 삼성페이를 모르는 할아버지와 안으로 들어간 루루는 다행히 결제를 마치고 나를 향해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비로소 우리는 웃을 수 있었다.


 그 뒤로 루루는 전기차가 필요하다며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에게 전기차가 생겼다. 우리와 40번째 산까지 함께해 준 승용차와 작별인사를 했다. 내가 아는 차들 중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간 차가 아닐까 싶다.


 전기차를 타고 다닌 이후로 10만 원 정도 나왔던 교통비가 3만 원으로 줄었다. 돈을 아낄 수 있다는 것에 꽂힌 건지 루루는 한동안 차박에 정신이 쏠려 혼자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다녔다.


 어느 날 나를 차에 태워 집 근처 공터로 데리고 간 그는 뒷좌석 시트를 접고 트렁크를 열어 에어매트에 바람을 집어넣었다.

 “짜잔!”

 트렁크는 사람 두 명이 누울 수 있는 아늑한 공간으로 변했다.

 “그래.. 잠깐 누워서 쉬기엔 좋아 보이네.”

 “내일 우리 차박 할 거야.”

 “여기서 잔다고?”

 루루는 차박이 얼마나 낭만적인지 떠들어댔지만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 하나도 안 들렸다. ‘어디서 씻어?’ 그런데 한편으론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도 같았다.

 다음날 우리는 경상도 가야산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너무 졸려서 성주 휴게소 주차장에서 잠을 잤다. 새벽에 화장실이 가고 싶어 깼는데 화장실 앞에 있는 커다란 참외 동상을 보고 다시금 이곳이 성주임을 깨달았다. 볼일을 보며 화장실 문에 붙은 거대한 벌레와 눈싸움을 하고 손을 씻고 나왔다. 아직 새벽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이렇게 차박을 시작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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