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남 몇몇이 모이면 종종 이런 주제의 대화가 오간다.
‘집에서 아내보다 얼마나 우위에 있는가?’
그럼, 그중 꼭 한 명은 갑자기 어깨에 힘을 주며 자신의 경험담을 마치 영웅담인 것처럼 하나둘 풀어내기 시작한다. 그 말이 실제로도 실현되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난 그런 대화 중에 주로 입을 닫는 편이다. 할 말이 있지만 말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난 소위 말해 아내에게 꽉 잡혀 사는 남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아내에게 꽉 잡혀 사는 것’이 남자들 사이에서 책잡히는 약점이 되는 걸까?
뭔가를 손에 움켜잡는 상상을 해보라.
만약 그 물체가 너무 커서 잡기 힘들다면, 손아귀의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물체가 너무 작아도 제대로 힘을 쓰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또, 적당한 크기라 할지라도 모양이 들쭉날쭉하거나 모가 나 있다면 제대로 움켜잡을 수 없다. 그렇다. 무언가를 손으로 안정감 있게 움켜잡기 위해서는 적당한 크기, 알맞은 모양의 물체라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손과 물체는 서로를 단단하게 맞잡을 수 있게 된다.
이렇듯, 무언가를 꽉 잡기 위해서는 손뿐만 아니라 잡히는 대상도 중요하다. 이제 다시 ‘아내에게 꽉 잡혀 사는 남편’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아내에게 제대로 잡히려면 적당한 크기에, 알맞은 모양의 남편이어야 한다. 아내의 말을 무조건 따르는 것은 제대로 잡혀 사는 것이 아니다. 아내의 손아귀의 힘이 너무 강하면, 생각과 몸을 단단하게 만들어 아내의 마음을 받아낼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아내의 손에 힘이 부족하다면, 내 몸을 부풀려 아내의 손을 포근하게 감쌀 수 있어야 한다.
난 아내에게 꽉 잡혀 사는 남편이다. 아니, ‘잘 잡혀 사는 남편’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듯하다. 아내의 생각을 전적으로 지지하되, 아내가 미쳐 신경 쓰지 못하는 일은 적극적으로 챙기기 위해 노력한다. 때론, 아내의 매서운 눈빛에 긴장될 때도 있지만, 결혼생활 8년 동안 쌓인 노하우로 이제는 제법 아내의 손에 알맞은 남편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아내도 자주 손에 힘을 빼곤 한다. 이런 과정을 부부 사이의 기싸움으로 여기면 피곤함만 늘어갈 뿐이다. 때론 아내의 힘주어 쥔 손이 저리지는 않은지 살펴보라. 가족의 일상을 챙기는 그 힘듦이 아내가 손아귀의 힘을 풀지 못하게 만들고 있을 테니까.
함께 걸어가는 인생이라는 길에서 아내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지 말라. 아내의 짐을 하나씩 옮겨 지다보면, 어느새 알맞은 모양과 크기의 남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난 아내에게 꽉 잡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