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밤 Jun 07. 2024

집안일을 전담해 보라

"아, 그거 내가 좀 이따 하려고 했는데..."


아내에게 자주 하는 말 중 하나다. 왜 늘 타이밍이 맞지 않은가. 나는 정말 조금 뒤에 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내는 한 끗 차이로 내가 하려 했던 일을 해버리곤 나에게 볼멘소리를 한다.


요즘은 부부가 함께 집안일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한다. 실상은 어떤가? 집안일을 수치로 매겨 각자가 얼마 큼의 일을 하는지 따져보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일까? 집안일에 참여하는 남편들 중 자신이 집안일의 절반 이상을 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들 한다.


나 역시 불과 6개월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결혼 6년 차에 뒤늦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 깨달음은 집안일  중 한 가지를 전담해 보고서야 얻은 실천척 깨달음이었다.


'전담'이란 남의 손을 구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의 책임 하에 일을 진행함을 뜻한다. 내가 전담하게 된 영역은 '주방'과 관련된 일체의 영역이었다.


생각으로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평일 퇴근 후 저녁 상을 재빠르게 차린다.'

'아내와 딸과 차분하고 여유로운 식사를 한다.'

'그리고 설거지를 한다.'


단 세 문장으로 끝날 것만 같은 주방일. 그런데 막상 부엌을 전담하니, 해야 할 일이 둑 터진 듯 쌓여갔다.


저녁상은 그냥 차려지는 것이 아니다.

반찬을 할 시간이 없다면 퇴근길에 반찬가게에 들러 뭐라도 사 와야 한다. 또 아이의 반찬은 저염에 영양을 고려해 짬짬이 만들어야 한다.


저녁상을 차리고 밥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기까지 최소 1시간은 선 채로 있어야 한다. 발바닥이 아프고 무릎이 시큰거린다.


상상 속의 여유 있는 저녁식사 시간은 주방 내공이 적어도 몇 년은 쌓여야 가능할 듯싶다.


설거지까지 마치고 나면 정말 녹초가 된다.


주말이라고 사정은 좋아지지 않는다. 외식을 하지 않는 날은 무려 세끼를 차려야 하니, 정말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다.


이렇게 6개월에 접어들자, 이제는 주방에 조금이나마 적응을 하게 됐다. 그래도 무릎의 시큰거림은 난제로 남아 있지만.


주방을 전담하고 밥을 챙기면서 살이 빠졌다.

힘들게 만든 반찬으로 최소 몇 끼는 때워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반찬을 아껴먹게 됐다. 또, 밥을 먹자마자 드러눕던 버릇도 말끔히 사라졌다. 하는 김에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 '게으름'이라는 악귀에 잡아먹히게 되니, 뭐든 미루지 않고 몸을 바삐 움직인다.


남자인 나도 이렇게나 힘든데, 일까지 다니면서 집안일을 챙기던 아내가 새삼 대단해 보였다. 그동안 내가 하던 집안일은 불성실한 아르바이트생이 생생내기식 일을 하던 수준이었다.


나름 집안일에 참여한다고 생각하는 남편들은 대부분 반성해야 한다. 만약 아내에게 잔소리를 듣고 있다면, 불성실한 아르바이트생일 확률이 높을 것이다.


집안일을 전담해 보라. 하나에서 열까지 일련의 과정을 모두 혼자 해보라. 그동안 아내의 노고와 희생에 눈시울이 붉어질지도 모른다.


아내의 쓴소리가 애정 가득한 응원의 소리로 변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제야 집안일 중 한 가지를 겨우 알게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