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는 정말 어렵다. 그래서 더 재밌다.
테니스를 배운 지 1년쯤 지났을 무렵, 장비에 욕심이 생겼다. 자신이 선망하는 프로선수가 사용하는 테니스 라켓과 동일한 모델을 손에 쥐는 상상만으로도 실력이 향상되는 것만 같았다. 그 바람은 어느새 갈망이 되어 있었다. 신중한 검색 끝에 마음에 쏙 드는 모델을 찾았다. 그런데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라켓을 손에 쥐기 위해서는 우리집 재무부장(아내)의 결재라는 험난한 산을 넘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테린이를 갓 벗어난 나에게 그 라켓은 과분했다. 하지만 한 번 마음에 자리 잡은 라켓에 대한 열망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부터 아내의 점수를 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먼저, 평소 아내가 늘 챙기라고 말했던 것들을 하나씩 떠올려봤다. ‘집 재산세 내기’, ‘방문 소독 일정 변경하기’. ‘정수기 관리 받기’, ‘아이 학원비 확인하기’ 등등. 대부분 사소한 일들이란 생각에 건성으로 듣고 흘려버렸던 것들이다.
그런데, 사소한 것 같았던 일들이 실은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복잡하고 전문적이어서가 아니라, 날짜를 확인하고, 일정을 조율해야 하는 등, 귀찮은 것투성이였기 때문이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특별하고 거창한 무언가로 이뤄져 있지 않다. 반복되는 사소한 일들의 총합이 바로 ‘삶’이다. 늘 해오던 일이기에, 사소하다고 여기며 그 중요성을 간과하게 된다. 아내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하던 것들이 바로 우리 가족의 삶을 지탱하던 중요한 일상이었다.
반복되기에 시야에서 벗어나기 쉬운 일상을 챙기기 시작하자, 아내의 칭찬이 자연스레 늘었다. 그러던 와중에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테니스 라켓’은 점점 잊혀가고 있었다. 이곳저곳에 분산된 정신이 테니스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 무렵, 택배 도착을 알리는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무슨 택배지? 주문한 게 없는데.’
그리고 잠시 뒤, 아내로부터 사진 한 장이 첨부된 메시지를 받았다.
“말 잘 듣는 여보, 고생했어. 그리고 생일 축하해.”
순간, ‘아, 곧 내 생일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첨부된 사진을 봤다. 그 사진 속에는 내가 자나 깨나 갖기를 소망하던 영롱한 테니스 라켓이 담겨 있었다. 태블릿에 몰래 캡처 둔 수십 장의 라켓 사진을 아내가 본 모양이었다.
가족의 일상을 챙기기 시작하자, 테니스 라켓이 덤으로 따라온 기분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동안 대가 없이 가족의 일상을 챙기던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족의 행복은 특별한 무언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님을 이제는 안다. 시작은 테니스 라켓을 얻어 내겠다는 얄팍한 속셈이었지만, 사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값진 기회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테니스는 정말 어렵다. 그리고 좋은 라켓을 구비하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하지만 당신의 일상을 성실하게 챙긴다면, 불현듯 뜻밖의 행복이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