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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키그레이 Apr 01. 2024

겨울의 나이아가라 폭포는 춥다

 뉴욕을 1박 2일 갔다 오는 것을 포기하고 우리는 나이아가라 폭포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1-2시간 이동했던 것 같다.


도착한 버스정류장에서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유명한 관광지인만큼 사람들이 빼곡하게 있지 않을까 했는데 시골 마을에 들른 것처럼 조용했다.


잘 닦여진 길 위를 B를 따라 계속 걸었다. 좌우로 잎이 다 떨어진 큼직한 나무들이 즐비한 길을 걸으니 조용한 공간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캐나다의 겨울이 갑자기 더 춥게만 다가왔다.


”여긴 여름에 오면 잎들이 풍성하고 파래서 더 예쁜데, 지금은 휑하네 “


B도 이 차가운 풍경을 느꼈는지 여름 때 와서 찍었던 풍경사진을 보여줬다. 확실히 파릇파릇하고 햇살도 쨍한 것이 훨씬 더 생기 있는 분위기였다.


하다못해 붉고 노란 낙엽들이라도 있었더라면 가을만의 포근한 감성을 느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3년 전부터 바오밥 나무를 기르고 있다. 인터넷으로 씨앗을 샀었는데, 3개가 다 싹을 틔웠고, 중간에 위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꽤 많이 자랐다. 바오밥의 한 가지 특징이라면, 워낙에 더운 곳에서 살 던 식물이라 겨울이 되어 버리면 잎이 져버린다. 그리고 다시 한 더위의 여름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지마다 잎을 틔워 풍성해진다.


아무튼, 겨울에 죽은 거 아냐 할 정도로 잎이 저 버리는 바오밥처럼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러 가는 이 길의 나무들도 잎이란 잎은 남겨두지 않고 추운 겨울을 나고 있었다.


여기도 따뜻한 날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잎을 파릇하게 피울 테니, 언제 한 번은 따뜻한 날에 이곳을 다시 찾고 싶었다.


그래도 겨울 나름의 운치가 있지 않느냐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하다못해 눈이라도 쌓였으면 분위기는 더 좋았을 것 같았다.


그렇게 10분 정도 걸었던 것 같다.


저 멀리서부터 폭포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웅장하다’


딱 적절한 표현이었다. 멀리서 보는 폭포는 쉴세 없는 폭포소리와는 다르게 아주 천천히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폭포소리의 박자감과 멀리서 보이는 폭포가 떨어지는 속도감이 다르니 몸이 더 긴장하게 되면서 심장박동도 빨라졌다. 한 편으로는 무서웠고, 또 한 편으로는 속이 뻥 뚫리는 쾌감도 있었다.


(출처:픽사베이)


폭포가 있는 곳까지는 생각보다 꽤 멀었다. 넓은 광장 같은 길이 직선으로 쭉 뻗어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산 길을 깎아서 만들었거나, 지반을 성벽처럼 쌓아 올리는 작업을 했거나 어찌 되었든 이 길은 폭포와 눈높이를 같이 하고 있었다.


보통은 폭포를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는데 거의 폭포를 정면에서 보는 듯해서 거대한 폭포를 온몸으로 짜릿하게 느낄 수 있기보다는 감상하듯이 편안하게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아래 강가에서 배를 타고 폭포 가까이로 가는 상품이 더욱 인기가 있는 듯했다.


평소에 우리가 폭포를 볼 때 느끼는 시원함과 웅장함을 이 길 위에서는 느끼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지는 않았다.

겁이 많은 나야 이런 안정감을 더 좋아해서 배를 타고 가까이 가는 건 무섭게 느껴졌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폭포의 느낌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배를 타는 것이 옳은 선택일 것이다. 물론 돈이 있다는 전제는 필요하다.


우리는 돈이 없으니(배를 타지 않은 건 돈의 문제가 최우선인 이유는 아니었지만) 길을 따라 폭포 가까이로 다가갔다. 다가가면서 폭포를 보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우비를 입은 사람들이 꽤 있었다. 비가 안 오는데 왜 우비를 입지 생각했는데, 폭포에 가까이 갈수록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워낙에 거대한 폭포이다 보니 물이 흩날리면서 옆으로까지 퍼져나갔다. 마치 바람이 거센 날 비가 오는 것처럼 폭포의 물방울들이 옆으로 뿌려댔다. 우산은 소용없었을 것이고, 이 물방울들로부터 몸이 젖지 않는 방법은 우비 밖에 없었다.


일단 뿌려대는 폭포비 때문에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볼 수는 없었다. 기념품이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창 밖으로 어렴풋하게 폭포를 볼 수는 있었기에 일단 건물로 피신했다.


건물로 들어온 김에 화장실에 갔었는데 손 건조기에서 머리를 말리는 사람, 젖은 옷을 말리는 사람 등 우리와 같이 우비를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로 화장실이 북적였다. 이 정도면 건물 안에 건조만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엄청난 서비스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젖어버린 몸에 추운 날씨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이런 경험을 또 해볼 일이 있겠나 싶었다.


‘이런 경험을 어디서 해봐’ 하는 생각이 드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 있으니 말이다.


젖은 옷도 말릴 겸 뭐 살 건 없나 하며 기념품들을 돌아보았다.


A는 여행을 할 때, 배지(자석 아니면 배지이지 싶다)를 산다고 했다. 그 지역을 떠올릴 수 있고, 가볍고, 때로는 선물하기도 딱 좋은 것이었다. A는 그런 꼼꼼함과 실용성을 갖춘 사람이구나 새삼 느끼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딱히 살 것은 없었다.


옷이 대충 말랐지만, 생각해 보니 나가면 다시 젖게 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집에는 가야 하니 어찌 되었든 나가야만 했고, 우리는 폭포를 떠났다.


돌아가는 길에는 이미 해가 다 졌다.

(출처:픽사베이)


해가 지니 폭포 맞은편의 카지노 같기도 하고 놀이동산 같기도 한 건물에서 조명을 폭포로 비추었다. 폭포에 알록달록 색깔이 더해지니 이제야 폭포에 생기가 들어 보였다. 자연의 푸릇한 색상이 없는 아쉬움이 돌아갈 때야 조금 충족된 기분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가족도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5-6살로 보이는 꼬마 아이가 지치지도 않는지 떠드니 부모님이 조용하라고 주의를 줬다. 영어라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 표정과 제스처만 봐도 우리네 가족과 다를 바 없었다.


신기하게도 이런 소소한 장면들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


길을 걷다가 지나쳤던 사람들, 한두 마디라도 대화를 나누어 보았던 사람들 얼굴도 목소리도 향기도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이런 사람들이 있었지 하는 기억들이 떠오른다. 이런 사소한, 큰 감동도 불편함도 없었던 그런 장면들이 굉장한 자연이나 아름다운 건축물을 기억하는 것만큼 기억에 남아있다. 왜 그런 기억이 떠오르는지 알 수는 없다.


사람이 내가 기억하고 싶은데로 기억하는 경향이 있고, 모든 것을 다 기억하지 못하다 보니 마치 내가 기억하고 있는 정보들에 괜히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 것만 같다.


11월의 나이아가라 폭포의 기억은 그렇게 끝이 났다.


문득 글을 쓰다 보니 7-8월 즈음에 따뜻하고 쾌청한 날씨의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뭔가 A와 B 셋이서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던 것 같은데 그건 또 기억이 안 난다.


토론토에서의 추억은 여기서 끝이 난다.


다른 곳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과는 다르게 괜히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친구들과 함께한 순간이었던 만큼 함께한 기억들이 많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아쉬운 마음은 뒤로하고 이제 여행의 마지막 장소인 ‘옐로 나이프’로 향할 순간이 왔다. 여행도 그렇게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고, 오로라에 대한 기대감도 커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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