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2021년 10월 20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창작지원금과 텀블벅 펀딩의 후원금으로 (도)아이필드에서 <표류사회: 한국의 여성 인식사>라는 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책에는 더욱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합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주자학의 예법은 주자가 지은 『주자가례』라는 예서(禮書)를 기본으로 한다.
주자가례』 식으로 혼인 풍속을 뜯어고치자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친영례(親迎禮)란 것이었다. 친영이란 신랑이 신부 집으로 가서 친히 신부를 맞이한 후 바로 본가로 데려와 혼례식을 올리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시댁으로 신부를 데려와 혼인을 올리고 바로 시집살이를 시작하는 것이 친영이다.
조선의 왕과 신료들은 친영례를 이 땅에 뿌리내리고자 부단히 애를 썼다. 주자학을 공부한 관료들의 관점에서는 오래된 처가 중심의 전통을 친가 중심 체제로 바꾸기 위해 친영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오래된 풍습 바꾸기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들은 지속적으로 전통 혼속을 문제 삼았다.
남자가 여자 집으로 가서 사니 무식한 부인네들이 자기 부모의 사랑만 믿고 지아비를 홀대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_(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
강상(綱常)과 풍속은 무너지게 할 수 없는 것이니 한 번 무너지면 인류가 멸절합니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같은 친영례가 없어서 모두 처가를 자기 집으로 여기며 삽니다. 장인을 아버지라 부르고 장모를 어머니라 부르며 평소 부모와 같이 여깁니다._(조선 초 문신 손순효)
세종대왕은 마침내 큰 결단을 내렸다.(1434년)
친영례는 지극히 아름다운 법이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의 집으로 장가드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행한 지가 오래되어 쉽게 고칠 수가 없다. 태종 때 친영례를 행하고자 하였는데, 신료들이 듣고 많이들 꺼려하여 어떤 이는 (친영례를 피하고자) 어린아이를 사위로 맞는 일까지 있었으니, 싫어함이 이와 같아서 행하기가 어려웠다. 생각건대 왕실에서 행하게 되면 아래의 뜻 있는 자가 보고 그대로 따르게 될 것이 이치의 필연이라. 금후로는 왕자와 왕녀에게 친영의 예를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잘 의논해 아뢰어라.
바로 자신의 왕자, 공주들부터 친영례를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조선 최고 가문인 왕실부터 시작하면 사대부들이 응당 따라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별로였다. 수백 년간 친영례는 왕실만의 보여주기 행사가 되었다.
결국 중종 11년(1516)에는 친영을 아예 법으로 제정하고 규찰하라는 간언까지 올라왔다.
친영례는 좋은 법이고 아름다운 뜻인데도 사대부들이 아직도 구습에 젖어 거행하는 사람이 없으니, 법을 세우지 않으면 끝내 시행되지 않을 것입니다. 법사로 하여금 규찰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_(간언이 고한 내용)
그래도 친영례가 잘 정착되지 않자 영조대왕(1770년)에 이르러서는 사대부 혼사에는 반드시 친영례를 행하라고 칙명을 내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