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찌개와 제육볶음
벤처기업, 벤처인들의 탄생
같은 듯, 다른 벤처기업(Venture)과 스타트업(Startup)
매스미디어를 보면 이따금, “지금은 스타트업, 예전에는 벤처기업이라고 불렸던”이라고 하며 유망 창업기업들을 소개하곤 하는데, 이는 엄밀히 말하면 잘못된 표현이다. 벤처기업은 지금도 여전히 벤처이고, 스타트업은 창업한 지 얼마(대개 7년 이내) 되지 않은 기업들의 통칭이다.
벤처기업은 혁신 기술의 연구개발이나 혹은 그 기술을 통한 아이디어로 창업한 회사를 의미하고, ‘중소벤처기업부, 벤처캐피털, 벤처기업인증 등’ 실제 행정상으로도 엄격하게 구분하여 그에 따른 혜택을 제공한다.
처음 ‘벤처기업’이라는 용어를 접한 것은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을 준비하던 1997년, IMF 경제 위기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소위 ‘굴뚝 산업’이라 불리던 전통적인 제조업과 금융업이 외환위기의 자초하여 파국을 맞게 되는 그 경계 어디쯤부터 어떤 일단의 무리들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기술과 혁신의 모멘텀을 기반으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들이 바로 대한민국 1세대 벤처인들이었다.
1세대 벤처인들은 주로 ‘IT 대기업에서 신사업이나 연구개발을 하던 분(특히, 삼성SDS 출신들)이거나,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거나 컴퓨터 관련 동아리에 소속된 분들, 컴퓨터 관련 교육계에 있었던 분들’로 구성되었다. 시작하는 모습은 조금 달랐어도 ‘인터넷 기술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공통된 꿈을 꿨던 분들이 바로 1세대 벤처인들이었다.
사실, 이 1세대의 벤처기에는 ‘초연결, 초개인화, 지능화, 자동화, 융합 등’ 지금과 같은 어떤 거창한 혁신의 기치는 없었다. 누구도 가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로 이제 막 항해를 시작했을 뿐이고 이렇다 할 사업모델도 딱히 없었지만 마젤란이나 콜럼버스가 된 기분으로 어딘가에 있을 신대륙을 발견하기 위해 뜻을 모으고 함께 꿈을 키워갔다.
1세대 벤처기업의 특징
1세대 벤처기업은 인터넷을 활용하는 방법에 따라 크게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웹 사이트(Web Site)를 만드는 기업, 두 번째 웹 서비스(Web Service)를 만드는 기업, 마지막 세 번째 웹 사이트와 웹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연결시켜 주는 검색서비스(Search Engine) 기업이다.
첫 번째 웹 사이트를 만드는 기업은 다시 UI/UX 디자인과 기획을 전문으로 하는 웹 에이전시(Web Agency)와 웹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SI(System Integration) 기업으로 분류할 수 있고, 두 번째 웹 서비스를 만드는 기업은 Commerce, Content, Community, Communication, Game으로 분류할 수 있다. 웹 서비스 기업들은 이후 각각의 사업모델을 발굴하여 독자적인 생태계를 만들어 갔으며, 이후 이런 웹 서비스를 통합하여 거대한 플랫폼 형태로 사업화시킨 것은 검색서비스 기업들이다.
1세대 벤처기업의 리더는 단연 검색서비스 기업들이었다.
‘네이버,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 야후, 엠파스, 라이코스, 심마니, 천리안, 알타비스타, 미스다찾니, 까치네 등’ 이 시기에는 수많은 검색서비스 기업이 있었다. 이들 기업은 검색 엔진(Search Engine)이라는 소프트웨어에 관심이 있었던 컴퓨터 공학과 출신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대표적으로 네이버의 창업자 이해진, NHN 회장 이준호, 카카오 의장 김범수,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엠파스의 박석봉 등이 그러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이들 4명은 서울대 동문이긴 하나 전공이나 학번이 같은 것은 아니다. 컴퓨터 공학과 출신은 이준호와 박석봉이고, 이해진은 전자계산기공학, 김범수는 산업공학과 출신이다. 컴퓨터공학과 출신 이준호와 박석봉은 선후배 관계이며 이들은 코난테크놀로지와 협업하여 엠파스의 검색엔진을 만들었다. 이후 이준호와 박석봉은 모종의 이유(유력한 설이 있지만 이는 확인할 수 없기에 작성하진 않는다.)로 결별하였으며, 결별 시에 이준호를 네이버에 받아준 이가 이해진이었다. 이준호는 지금까지 NHN 회장을 맡고 있다.
앞서 등장한 코난테크놀로지라는 기업은 현재, 대한민국 대표 ‘빅데이터 & 인공지능’ 전문기업으로 성장했으며 필자와도 인연이 있다. ‘코난테크놀로지’를 기업 검색을 하면 검색면에 이런 결과가 나온다.
여기에 ‘2003년 6월 2일에 엠파스와 함께 중국 웹 번역 서비스를 시작하였다.’라고 나오는데, 이 중국 웹 번역 서비스를 만든 이가 바로 본인이다. 당시에 코난테크놀로지의 김나리 박사께서 중국 웹 번역 API를 주셨고, 사이트 기획부터 디자인, 코딩까지 모두 나 혼자 했다. 이 시기에 엠파스가 담당자가 나였다.
사실 야사 같은 얘기지만, 2006년에 ‘이제는 대기업으로 가자!’는 마음으로 이직을 했는데, 엠파스에 그냥 다니고 있었어도 SK그룹의 직원이 될 뻔한 개인적인 사연이 있기도 하다. 그리고, 2006년에 7월에 현대자동차그룹으로 이직 후, 몇 개월이 지나 엠파스가 SK커뮤니케이션즈로 합병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인생사 참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 당시에 엠파스 출신들에게 들렸던 소문이 있었는데, 박석봉 대표가 당시 창립멤버 중 한 명이며 검색 사업본부를 이끌고 있었던 한성숙 이사에게조차 합병에 대한 사실을 사전에 공유해 주지 않았다는 것과 이런 이유로 한성숙 이사가 SK커뮤니케이션에 합류하지 않고 야인이 되었다는 설이었다. 그리고, 야인 생활을 하던 한성숙 이사를 네이버로 불러드린 이가 바로 박석봉 대표에게 섭섭함을 갖고 있었던 NHN의 이준호 박사(지금은 회장)라는 설 또한 한동안 소문으로 돌았다. 그 한성숙 이사는 훗날 네이버의 대표이사 자리까지 올랐으며, 현재 카카오의 정신아 대표, 네이버의 최수연 대표 등 여성 대표이사들이 국내 최고 IT 기업을 이끌게 한 개척자가 되었다.
벤처기업은 말 그대로 모험(Venture)을 하는 집단이었다.
나는 초창기 벤처(모험, Venture)에 대한 향수가 있다. 당시의 벤처 산업은 사실, 벤처보다는 어드벤처에 가까웠다. ‘투자와 회수’라는 냉정한 목적보다는 신대륙 발견이나 새로운 항로 개척과 같이 미지(未知)의 영역을 탐구하고 탐험하는 어드벤처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 당시의 사업계획에는 재무적인 숫자도 모호했고, 사업의 KPI 또한 애매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수익모델이 있을지 가정만 있을 뿐 검증된 결과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때 나온 것이 바로 ‘Business Model Canvas(BMC)’라고 불리는 사업계획 방법론이고, 이 BMC는 2010년대 전후로 린 스타트업(Lean Startup)이라는 초기 창업기업 운영전략이 유행될 때 Lean Canvas로 한 번 더 업그레이드되었으며, Agile 개발 방법론과 융합하여 초기 IT 서비스 사업전략으로 활용된다.
내가 이때를 향수하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는데, 이 당시의 사업모델과 사업전략은 창조적 혁신(Creative Innovation) 정신을 바탕으로 두었기 때문이다. 없던 것을 만들어야 했고, 몰랐던 것을 탐구해야 했으며, 그런 결과가 실패여도 그 시행착오조차 용인되어 누구도 서로를 비난하지 않았던 시대였다. 그래서, 김치찌개 한 그릇, 제육볶음 한 접시만으로도 의기투합이 되었고 함께 꿈을 키워갈 수 있었던 낭만의 시대였다.
한때 플랫폼 비즈니스가 수면 위에 오르면서 무엇을 파괴하여 그 잿더미 위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현재의 카카오 그룹이며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완전히 벤처 캐피털의 정책과 제도의 변화가 불가피하게 만든 이유일 것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창조적 혁신의 바람이 거세게 일어나는 상황에 대한민국은 벤처의 생태계를 ‘투자와 회수’라는 극단으로 몰아가고 있었기에 더 이상 창조할 혁신은 없고 부수고 파괴하여 그 잿더미 위에 내 것을 올리는 파괴적 혁신만이 대한민국 IT의 전형적인 사업전략이 되었을 것이다.
김치찌개와 제육볶음
어디 음식이 김치찌개와 제육볶음 밖에 없었겠는가…
그러나, 내가 벤처 1세대를 향수하면서 가장 떠올랐던 음식들은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이었다. 마치 해외 출장을 다녀오는 귀국길에 집에 가면 먹어야지 하면 떠오르는 음식처럼 말이다.
참 낭만이 있었던 시대였다.
나도 젊었고, IT도 젊었다.
그래서, 시행착오와 실수투성이였지만 나도, 대한민국 IT도 빠르게 빠르게 고도 성장했던 것 같다.
대한민국이 IT 강국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경제 성장이 가능했을까?
혹은 우리가 IT 산업 외에 어떤 새로운 산업을 발굴할 수 있었을까?
누가 뭐래도 1세대 벤처기업과 벤처인들은 대한민국을 재건한 주역들이다. 그리고, 그 주역의 한 사람으로서 생성형 인공지능을 비롯하여 앞으로의 IT 산업도 대한민국이 앞서 나갈 수 있기를 절실히 바란다.
벤처가 아닌 어드벤처를 원하는 많은 젊음이 있기를 소망해 본다.
- 까칠한 펜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