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입니다.
저는 비교적 등산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등산이 인생의 축소판이란 생각이 들어서 좋아합니다.
등산을 할 때에는 출발하는 시간이나 장소보다도 하산하는 시간과 장소가 더 중요하고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습니다.
끝없이 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디로 하산할 것인지를 항상 염두에 두면서 출발시간과 속도와 거리를 정해야만 안전합니다.
저는 1970년 당시 총무처 시행 5급을 류(9급) 국가행정직 공개채용시험에 합격 1971년 3월 20일 조건부 행정서기보로 공무원을 시작하였습니다.
정말 철없던 시절에 공무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추천받은 부처가 어떤 일을 하는 지도 전혀 모르고 무조건 임용에 동의하였습니다. 가난 때문에 학교를 다니지 못한 저로서는 산간오지 지게 밑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수단이었으므로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출발했던 것이 벌써 40년의 세월이 흘러 오늘 명예퇴직을 합니다. 그동안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오랫동안 근무하다 보니 이 자리에서 영예롭게 공직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회도 많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습니다. 그러나 공직을 마감하면서 저는 “정말 좋은 직장”에서 일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그동안 운 좋게도 7차례나 승진을 거듭하였습니다. 저의 특이한 성격상 승진나 인사 과정에서 상급자인 심사위원이나 관련자 등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거나 빈말이라도 감사 표시조차 제대로 한 일이 없었습니다. 이는 결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라 못난 성격 탓이었습니다.
마지막 논술시험으로 사무관 승진을 한 후, 서기관, 부이사관, 고위공무원으로 승진은 동기들보다 매번 늦었지만, 오히려 지금까지 근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저는 정말 신기하게도 좋은 상관과 선배, 그리고 이해심 많은 동료나 후배들을 만나는 행운을 누려 왔습니다. 그동안 잘 지도해 주시고 보살펴 주신 선배님들 그리고 동료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특히 같이 일하시면서 저의 급한 성격과 늘 지나치게 일 욕심만 부리면서, 칭찬에는 항상 인색하였고 서툴렀던 부덕함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후배들이 많이 있습니다.
후배님들! 부디 지난 허물들을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오늘이 있기까지는 저와 함께 했던 여러분들의 덕분입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저는 여러 가지로 부족하였지만, 좋은 직장과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자녀교육과 가정도 잘 꾸러 오면서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직원 여러분!
여러분들이 여기 근무하시게 된 것은 어떤 법적의무나 강제가 아니라 스스로가 선택한 일입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했습니다. 선택을 잘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입니다. 아니 그것보다도 자신이 선택한 것을 계속하여 잘한 선택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이 더욱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선택하신 이곳에서 삶의 가치와 보람, 즐거움을 찾아내시면 잘한 선택이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잘 못한 선택이 되고 맙니다. 지금 하시는 일에 삶의 보람과 가치, 즐거움이 분명 있습니다. 그것을 찾을 수 없다면, 여러분이 만들어 내어야 합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생각하기에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직원 여러분!
세월이 참 빠르다는 말이 이제야 실감이 납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오늘부터 시작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10년 후에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때 가서 “내가 10년만 젊어서도” 하고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그때 말한 10년만이 바로 오늘이기 때문입니다.
직원 여러분들은 저보다는 모두 뛰어난 학력과 자격 그리고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목표를 달성한 기회는 반드시 옵니다.
희망을 갖고 그때를 대비하였다가 모두들 꼭 꿈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직원 여러분!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부디 늘 건강하시고 행운이 늘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밖에서 항상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원고 없이 했던 퇴임사에서 대내외 귀빈이나 가족, 친지에 대한 의례적인 인사말을 제외하고, 녹음된 것으로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