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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원 Oct 09. 2023

꿩고개와 독도

아름다운 우리말


꿩고개와 치현


  강서둘레길을 걷는다. 개화산 동쪽 봉우리로 가면 ‘꿩고개’가 나온다. 꿩이 많아 사냥하기 좋아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이정표에 ‘꿩고개 근린공원’ ‘꿩고개 약수터’ ‘꿩고개 체력단련장’과 ‘치현정’이 보인다. 


 고갯마루 근처 새로 지은 정자에 ‘치현정(雉峴亭)’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꿩고개’를 한자로 꿩 치(雉), 고개 현(峴)으로 썼다지만 그 뜻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왜 굳이 어려운 한자로 ‘치현’이라는 이름을 새로 지었을까? ‘꿩고개 전망대’나 ‘꿩고개 쉼터’라고 하면 누구나 알기 쉽고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아직도 한문이 진서고 우리말은 언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라도 한 걸까. 나는 그것을 보면 우리 땅 ‘독도’에 대한 일본의 생트집이 떠올라 기분이 영 씁쓸하다.   


대한민국 고유 영토 독도

   

  길을 걸으면서 생각한다. ‘독도’는 당연히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대한민국의 고유 영토이다. 결코, 국제분쟁지역이 아니다. 신라 때부터 계속 우리 땅인 독도를 러일전쟁을 치르면서 일제 침략자들이 느닷없이 자기 땅이라고 우기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굳건하게 지키고 있으니 이제는 국제재판을 하자면서 잔꾀를 부리고 있다. 우리는 그런 재판에 응할 이유가 전혀 없지만,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라는 확실한 증거를 일본이나 국제사회에 보여 줄 필요는 있다.   

    

  역사적으로 독도가 우리 땅이었다는 옛날 문헌이나 고지도가 많이 있다. 일본은 그것이 공식 기록이 아니라면서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시마네 현 고시 제40호’라는 것을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운다. 거기에는 임자 없는 섬을 자기들이 “1905년 2월 22일부터 다케시마(竹島)로 이름을 정하여 일본 영토로 한다.”라고 되어 있다.     


독도와 석도


  우리는 그들보다 5년 앞서 “1900년 10월 25일 울릉도를 ‘울도’로 이름을 바꾸고, 울도 군수가 담당하는 지역을 울릉 전도(全島)와 죽도, 석도(石島)로 한다.”는 대한제국 칙령 41호를 관보에 실어 세계에 알렸다. 여기에서 ‘석도’는 바로 ‘독도’다. ‘돌섬’ 또는 ‘독도’를 한자로 돌 석(石), 섬 도(島)로 적은 것이다.


  ‘독도’는 일본이 주장하는 임자 없었던 섬이 아니라, 본래부터 우리 땅이었고, 대한제국에서도 영토로 관리했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그런데도 일본은 칙령에 나오는 ‘석도’가 ‘독도’와 이름이 다르므로 같은 섬이 아니라고 생떼를 부리고 있다. ‘석도’는 우리 어민들이 ‘돌섬’ 또는 ‘돌’을 사투리로 ‘독’이라고 발음하여 ‘독도’라고 불렀던 섬이다. 


 일제강점기 때 발행된《조선어사전》에도 ‘독’은 ‘돌’의 사투리, ‘石(석)’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독도’ 외에도 주민들이 ‘돌섬이나 독섬’으로 부르는 섬을 한자로 ‘석도’라고 적은 사례가 더러 있다. 

     

  한강 너머 행주산성과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개화산 전망대’에 이르렀다. ‘독도’를 ‘석도’로 적은 것이 ‘꿩고개’를 ‘치현’이라고 한 것과 무엇이 다를까. 그들은 이곳에서도 ‘치현’이 ‘꿩고개’가 아니라고 끝까지 우길 수 있을까. 


 우리는 ‘독도’를 ‘석도’로 적은 까닭을 애써 설명하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다.’ 같은 한자 문화권이므로 ‘독도’와 ‘석도’가 같은 섬인 줄 그들도 알고 있을 터인데….

      

  역사에서 가정은 필요 없다고 한다. 하지만 대한제국 칙령을 만들면서 구태여 한자로 ‘석도’라고 적지 않고 어민들이 불렀던 그대로 ‘돌섬’이나 ‘독도’라고 적었더라면 그들은 또 무엇으로 트집 잡았을까. 그리고 칙령에서만 ‘석도’라고 해 놓고, 그 이름을 사용하지 아니한 아쉬움도 없지는 않다.


아름다운 우리말 이름


  어느덧 김포공항이 앞마당으로 내려다보이는 ‘하늘 전망대’에서 땀을 훔쳤다. 본디 우리말로 된 아름다운 땅 이름이 조선 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한자어나 일본어식 표기로 어색하게 바꾸어졌다. 그래서 주민들이 말하는 땅 이름과 공부상 지명이 달라 혼란을 겪고 있다. 


 그곳에 살았거나 이용했던 사람들이 불렀던 이름은 그들의 삶이 묻어나는 역사의 한 조각이다. 억지로 꿰맞춘 한자어에서는 조상의 숨결이나 정감을 도무지 느낄 수 없다. 나만 그러할까?  

    

  둘레길 따라 개화산역으로 향한다. 늘 불렀던 정겨운 땅 이름이 후손에게 그대로 전해지지 못하여 아쉽다. 새로 짓는 이름만이라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지었으면 좋겠다.  


 나는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꿩고개’를 갈 것이다. ‘치현’이 아닌 꿩 이야기가 떠오르는 그 길을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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