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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요유 May 31. 2024

실종된 레시피를 찾아서

어쩌면 새로운 레시피의 탄생

아빠가 까만 봉다리를 들고 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뭔가 묵직했다.

 

뭐 사 왔어?

마늘쫑

마늘쫑?

 

식탁에 올려놓은 봉지를 열어보니 마늘쫑이 가득, 눈으로 세어보니 대략 예닐곱 묶음 정도 된다.

 

뭘 이렇게 많이 샀어?

그래야 싸. 광수네서 잔뜩 쌓아놓고 팔고 있어. 다들 2kg씩 가져갔어. 지금 이때만 먹을 수 있는 거니까.

 

맞다. 엄마는 그 계절에만 나오는 것을 싸게 사서 쟁여두고 나눠먹곤 했다.

 

이걸 다 어떻게 먹으려고?

장아찌 담그면 되지.

 

아빠는 장아찌용 간장도 같이 사 왔다. 광수네서 이 간장을 알려줬다고 한다. 장아찌용 간장은 간장을 끓일 필요도 없이 붓기만 해도 되는 간장이라 편하기는 편하다. 엄마도 이걸 사용해서 장아찌를 담갔는지, 직접 만들어서 사용했는지 아빠도, 나도 모른다. 엄마 평소 스타일을 생각하면 직접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나는 아삭아삭한 식감을 좋아해서 마늘쫑을 좋아한다. 엄마는 해마다 이맘때면 광수네서 마늘쫑을 사다가 간장을 부어 간장장아찌도 만들고 고추장에 박아 고추장장아찌도 만들고, 멸치랑 볶아서 반찬으로 만들어서 나에게 보내주었다. 손이 커서 워낙에 많이 보내주었고, 바빠서 잘 못 먹기도 해서 엄마가 반찬을 해서 보내주면 친구들과 나눠먹곤 했다.


그동안 엄마에게 얻어먹기만하고, 엄마가 해준 반찬으로 친구들에게 인심 쓰고 살았다. 앞으로 평생 얻어먹을 수 있을줄 알았는데 엄마가 쓰러지고 졸지에 해먹는 신세가 되었다. 아빠가 매년 하듯이 마늘종 한 무더기를 사왔으니 뭘 하긴 해야겠는데, 얻어먹기만 한 나는 마늘쫑 요리법을 모른다. 평생 엄마한테 얻어먹기만 한 아빠도 마찬가지. 누워있는 엄마한테 물어볼 수도 없다. 말을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물어도 아무리 물어도 대답이 없다. 엄마가 아프면서 엄마의 레시피도 함께 실종되고 말았다. 엄마는 마늘쫑을 어떻게 요리했을까? 유튜브로 검색하여 기본 요리법을 익히고 먹던 맛을 기억하고 상상하여 흉내내는 수밖에.

 

우선 엄마가 하던 마늘쫑멸치볶음을 해보자. 마늘쫑을 씻는다. 마늘쫑은 매끈하게 쭉 뻗어있고 흙이 묻을 일도 없어 쓱쓱 씻기가 좋다. 유튜브로 찾아본 레시피에는 간 마늘도 넣으라고 나오고, 어떤 음식에든 마늘을 많이 넣었던 엄마도 마늘을 넣었을 것 같은데 나는 마늘을 생략하기로 한다. 왜냐하면 마늘쫑이니까 마늘 맛이 날텐데, 뭐하러 마늘을 넣나 싶어서.


마늘쫑멸치볶음

1.     물기가 빠진 마늘쫑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엄마는 모양은 생각하지 않고 대충 잘랐지만 나는 일정하게 예쁘게 자른다.

2.     마른 팬에 중불로 멸치를 볶아 비린내를 날리고, 채에 가루를 걸러낸다.

엄마는 큰 멸치를 좋아하지만 나는 잔 멸치로 한다.

3.     움푹한 팬에 기름을 두세 바퀴 정도 두르고 마늘쫑을 먼저 볶는다.

엄마는 뭐든지 들기름으로 했지만 나는 그냥 식용유로 했다.

4.     마늘쫑 기름 코팅이 어느 정도 되고 마늘쫑 겉이 살짝 익으면 간장을 한 숟가락씩 넣으면서 간을 본다. 약간 싱겁게 느낄 정도만 넣으면 된다. 왜냐하면 짭짤한 멸치가 들어가서 섞일 거니깐.

엄마는 짠 음식을 정말 싫어해서 나도 심심하게 간을 한다.

5.     그다음에 단 것(올리고당, 물엿, 조청, 설탕, 매실청 류)을 취향껏 넣는다.

엄마는 단 음식을 싫어해서 단 것을 많이 안 넣었지만 나는 좀 달달하게 한다.

6.     멸치를 추가하여 볶는다. 너무 볶으면 아삭한 식감이 사라지고 색깔도 누렇게 되니 적당히 볶는다. ‘적당히’가 참 어려운데, 몇 번 하다 보면 느낌으로 알게 된다.

7.      불을 끄고 깨를 뿌린다.

  

처음 시작은 엄마의 맛, 엄마 레시피를 찾고 싶었던 거 같은데, 어쩌다보니 내 생각대로 하고 있다. 삶의 많은 면에서 엄마의 영향을 받았지만, 엄마와 똑같이 살지 않는 모습과 닮았다. 엄마의 레시피를 찾는 시간은 결국 엄마 없이 나 스스로 먹고 살 길을 찾는 여정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내가 마늘종 자르는 걸 지켜 보더니 씨방 아래로는 못 먹는다고 버리라고 한다. 길쭉한 마늘쫑 아래쪽에 불룩 튀어나온 마디가 씨방이다. 아빠가 씨방은 못 먹는다고 버리라고 하지만 나는 너무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남겨두었다가 따로 볶아보았다. 엄마의 맛이 아닌 전혀 새로운 맛이 탄생했다. 입맛 까다로운 동생이 먹어보더니 이게 뭐냐고 묻는다. 맛있다는 얘기다. 버리라고 했던 아빠도 마늘쫑볶음보다 씨방볶음쪽으로 젓가락이 더 자주 간다. 맛있다는 얘기다. 이 사람들, 맛있으면 맛있다고 할 것이지 왜 말을 못해!


평상시 엄마 없으면 못 살 거 같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그만큼 엄마는 나의 정신적 지주이자 동반자였다. 엄마의 공백으로 살림에도, 마음에도, 내 인생에도 구멍이 숭숭 뚫린 기분이다. 그런데 또 어떻게 어떻게 다 먹고살고 있고, 살아진다.  


내가 만든 걸 엄마 입에 넣어주었다. 아프기 전에는 나한테 얻어먹을 일이 없었는데 아프고 나서야 내 밥을 얻어먹고 있다. 대부분의 많은 가능을 잃어버린 엄마지만 먹는 건 참 잘 먹는다. 오물오물거리는 입을 보고 있노라면 참 신기하다. 엄마도 맛있다는 말은 안(못) 했지만 아마 무조건 맛있을 거다. 맛이 없어도 내가 했다면 맛있다고 했겠지. 어떻게 이걸 먹을 생각을 했냐고, 칭찬했겠지. 광수네 놀러가서 딸에게 이런 걸 배웠다고 자랑하겠지.


마늘쫑씨방볶음이 왜 맛있을까를 생각해보니까, 역시 식감 때문인 것 같다. 아삭아삭한 마늘쫑과 달리 쫀득쫀득하달까. 고추가루를 넣어 매콤한 맛도 한 몫한다. 굳이 비교하자면 맵지 않은 꽈리고추볶음과 비슷하다. 새로운 요리 창조 기념, 브런치 연재 기념으로 레시피를 남겨 널리 알리고자 한다.


마늘쫑씨방볶음

1.     팬에 기름을 두른다.

2.     씨방을 볶는다.

3.     고추가루를 넣는다.

4.     단 것을 취향껏 넣는다.

5.     불 끄고 깨를 뿌리면 끝


마늘쫑씨방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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