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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정 CindyKim Aug 22. 2021

사랑, 예술을 입다 1

송강 정철과 진옥의 사랑

누군가 가을은 후각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했던가.

지금쯤 한국은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에 서 있겠다.

홍콩엔 한국처럼 가을이란 특별한 계절은 없지만, 오래 산 이방인만이 느끼는 가을이 주는 느낌이 있다.

좋아하는 앨범 '침향무'의 '가을'을 듣고 있자니, '송강 정철(松江 鄭澈)'(이하 정철)과 '진옥(眞玉)'(이하 진옥)의 사랑 이야기가 생각난다.

시조집 '권화악부(權花樂府)'에 송강 첩(松江妾)이라고만 기록되어 있는데, 시조 문헌 중에 '누구의 첩(妾)'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은 그녀가 유일하다. 진옥도 기녀(妓女)임에 틀림없는데, 송강 첩(松江妾)이라고 기록된 것은 송강 정철의 지위와 명성 때문일 것이다. 

조선의 사회제도 속에서 양반의 축첩은 조금도 허물이 아니었기에, 이런 기록이 더 많이 있을 수 있으련만 유독 송강 첩이라는 기록은 진옥에게서만 보인다고해서, 더욱 관심을 갖게 됐다.




둘의 만남의 시작은 정철의 귀양살이하던 시절의 가을이었다.

송강 정철을 찾아온 진옥이 말하기를.." 진옥(眞玉)이라 하옵고 일찍부터 대감의 성을 들었사오며, 더욱이 대감의 글을 흠모해 왔습니다 ".

정철이 다급히 묻는다. " 그래? 내 글을 읽었다니 무엇을 읽었는고?" 하니, 진옥이 "제가 거문고를 타 올릴까요? "하고는 읊기를.......


居世不知世(거세부지세):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을 모르겠고

戴天難見天(대천난견천):하늘 아래 살면서도 하늘 보기 어렵구나

知心唯白髮(지심유백발):내 마음을 아는 것은 오직 백발 너뿐인데

隨我又經年(수아우경년):나를 따라 또 한 해 세월 넘는구나 


외롭고 쓸쓸한 귀양살이와 가는 세월의 무상함을 한탄하는 정철의 마음을 담은 시를 진옥이 알아 본 것이었다.

진옥을 만난 이후로 정철은 그녀의 샘솟는 기지와 해학, 학(鶴)이 나는듯한 가야금의 선율 속에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고 우울함을 잊을 수 있었다.

선조 25년, 임진왜란을 계기로 그 해 5월 오랜 유배생활에서 풀려 다시 벼슬길에 나가게 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송강을 보내는 자리에서 진옥은 이렇게 표현하여 노래를 불렀다.


人間此夜離情多(인간차야이정다):오늘 밤도 이별하는 사람이 많겠지요

落月蒼茫入遠波(낙월창망입원파):슬프다. 밝은 달 빛만 물 위에 지네

惜間今硝何處佰(석간금초하처백):애닯다. 이 밤을 그대는 어디서 자렵니까?

旅窓空廳雲鴻過(여창공청운홍과):나그네 창가에는 외로운 기러기 울음뿐이네 




부인 유 씨는 한양으로 올라온 정철에게 진옥을 데려 오도록 권하였고, 정철 역시 진옥에게 
그 뜻을 물었으나, 그녀는 끝내 거절하였고, 강계(江界)에서 혼자 지내며 정철과의 인연을 그리워하며 지냈다고 한다.

이 사랑의 얘기가 내 마음속에 오래오래 가슴에 남는 이유는 이렇게 마음에 담고 헤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평생을 그리워하지만 아니 만나고 사는 삶...

아름답지 아니한가..

홍콩에도 가을이 오려나 보다.

이 가을도 잘 넘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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