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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청서 Jul 16. 2021

둘째 날: 디날리 공원, 5월의 함박눈.

여름이라고 했는데...

우리가 디날리 국립공원 (Denali National Park)에 도착한 날은 여름 시즌이 오픈한 지 딱 이틀째.

"Shoulder season"이라고 해서 한여름 시즌이 시작하기 전이지만, 공식적인 여름 시즌의 시작으로 공원의 절반 정도가 열린다.


우리가 머물기로 한 곳은 Teklanika campsite, 줄여서 텍 (Tek).

디날리 공원엔 야생 보존을 위해서 특별한 룰이 있다.

드넓은 공원에 도로는 딱 하나.

차로 허용된 건 처음 15마일뿐, 나머지는 비포장에다가 차를 몰고 들어가려면 특별한 허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쿨버스처럼 생긴 공원 버스를 타고 관광을 한다.

공원이 얼마나 넓은가 하면, 그 스쿨버스를 타고 편도로 공원 끝까지 92마일을 가는 데 6시간이 걸린다.


단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텍 캠프장에 머무는 사람들은 캠프장까지 (30마일) 차를 몰고 갈 수 있다!

조건은, 한 번 텍 캠프장에 들어가면 3일 밤은 머물러야 한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디날리 공원의 나흘을 텍 캠프장에서 머물기로 하고, 페어뱅크스에서 생존에 필요한 모든 생필품을 사서 갔다. - 물, 음료, 땔감 나무, 간식과 음식 (S'mores 재료들, 마시멜로우와 그래햄 쿠키, 초콜릿도 잊지 않고!). 차를 몰고 갈 수 있으니 무게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넉넉히 챙겨갔다.


혹시 우리처럼 5월 말에 텍 캠프장에 머무시는 분들을 위해 - 물 넉넉하게 챙겨 가세요!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는데, 텍 캠프장에 물이 안 나왔다. 우리는 5 갤런 정도가 있어 마시고 요리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설거지할 물은 없어 텍 강에서 떠다가 썼다. 이곳에 매년 오시는 분 말로는, 시즌 시작에 텍 캠프장에 물이 안 나온 건 처음이란다. 코로나의 여파일지도.

텍 캠프장엔 상점도 없고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한 번 들어올 때 정말 잘 챙겨 들어와야 한다.


여름의 알래스카는 캠핑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해가 안 지니까!

텐트 치는 데도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자정 즈음 떠오른 달을 초저녁 같은 환한 하늘에 와인 한 잔 하며 가만 보고 있으면 힐링이 따로 없다. 하늘은 또 어찌나 푸른지.


디날리 텍 캠프장, 막 도착했을 때. 이때만 해도 룰루랄라 신났다. 자세히 보면 눈발이 날리는 걸 볼 수 있다.


다만, 눈이 올 수 있다...


우리가 들어갈 때는 비가 올 수도 있다는 일기예보였다. 공원 입구에서 바람이 좀 불기는 했지만, 후드티에 바람막이 정도면 문제없는 날씨. 영상의 최저기온이라고 했는데.


그런데 자정 즈음, 하나둘씩 눈송이가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새벽 한 시 즈음에는 눈보라로 변했다.

다행히 엄청 춥지는 않았다. 나는 추위를 많이 타서 혹시나 몰라 한겨울 파카를 가져왔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위 사진에 있는 빨간 파카가 나를 살렸다...


그렇게 디날리의 첫날밤, 우리는 예상치 못한 눈보라로 캠핑을 시작했다.

텐트에 누워 있는데, 사락사락 눈이 쌓이는 소리가 밤새도록 들렸다.

그리즐리 곰에게 잡아먹힐까 무서워 밤새 잠을 설친 나는, 쌓인 눈이 무거워져 한 번씩 텐트에서 흘러내릴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고 다시 잠들기를 반복.

산악자전거 타고 공원을 둘러봐야 하는데, 이렇게 눈이 오면 텐트 안에서만 추위에 떨다 가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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