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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청서 Jul 16. 2021

넷째 날: 이제 이쯤이면 샤워가 하고프다

인터넷도 샤워도 없지만 힐링되는 곳

우리는 일 년에 한 번쯤은 마음먹고 인터넷 없는 곳으로 간다.

디날리 국립공원도 그렇게 맘먹고 간 곳 중 하나.

인터넷은 물론이요 전화도 상점도 없다.

우리가 갔을 땐 캠프장에 흐르는 물도 없었다.


물론 샤워도 없다!

RV를 끌고 오면 전기랑 샤워가 있을 수 있겠지만, (실제로 알래스카에선 RV 캠핑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우리 캠핑장 주변에도 몇 주씩 RV 끌고 와서 즐기시는 분들이 꽤 있었다) 우리처럼 텐트 달랑 들고 캠핑하면 정말 자연과 하나가 된다.


미국 국립공원들은 캠핑장마다 시설이 다양한데,

이곳 텍 캠프장은 pit toilet (재래식 화장실)에 손 세정제만 있고, 손을 씻는 곳이나 샤워 시설이 없다.

대신 화장실이 깔끔하게 잘 관리된 편이라 사용하는 데 불쾌감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원래 캠핑용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는데, 우리가 있는 동안에는 나오지 않아 바로 옆 텍 강에서 떠다가 썼다. 물을 넉넉히 가져가야 하는 이유!


뜨거운 샤워도 브런치 포스트도 포기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해마다 국립공원이나 오지로 가는 이유는 진정한 쉼과 어딘가 모를 자유로움이다.

(그리고 대부분 하루 종일 바깥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초콜릿이랑 땅콩버터를 죄책감 없이 양껏 먹을 수 있는 장점도 물론 있다!)


교수 커플인 우리는 방학만 되면 어디에서 무얼 하건 대체로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데,

대신 논문과 발표들과 공저자들은 우리와 언제 어디든 함께하기 때문에 인터넷과 컴퓨터가 있는 한 우리는 늘 일할 수 있고 또 일하게 된다. (그리고 일하지 않으면 마음속 깊이 죄책감이 우리를 늘 짓누르고 있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일할 수 없는 상황에 스스로를 밀어 넣지 않는 한 우리는 늘 스스로 족쇄를 채운 일의 노예.

그래서 택한 게 인터넷이 없는 곳으로의 휴가이다.


처음 인터넷이 사라질 땐 혹시나 모를 급한 이메일이 걱정되고는 하지만,

몇 번 다녀와 보니 100개의 쌓여있는 이메일 중 내가 정말 신경 써야 할 것들은 5개도 되지 않더라. 물론 방학이기도 하지만...


게다가, 이만큼 가성비 좋은 고급 자연 휴양이 따로 없다!

우리는 국립공원 연 회원이라 입장료가 면제,

둘이서 텍 캠프장 일박에 30불. 나머지는 렌터카에 음식, 그리고 자전거 빌린 비용이 다다.

쪽빛 하늘과 시원한 공기, 조용한 저녁은 무료니까 말이다.

게다가 우리가 갔을 땐 사람도 별로 없어서 공원이 다 우리 차지였다.


위 사진은 우리가 넷째 날 탄 자전거 루트. 이 날은 텍 캠프장에서 입구 쪽으로 좀 더 나왔는데, 사진에서 보이는 단 하나의 도로가 우리 자전거 도로이기도 하다. (Pimrose Ridge가 보이는 사진; 다음 날 등산해서 찍었다).

이 날은 전날보다는 오르막이 덜 가팔라서, 그리고 이제는 꽤나 산악자전거 타는 데 익숙해져서, 비교적 무난 무난하게 7시간 정도를 왕복해서 달렸다. 편도 17마일 정도 (텍 캠프장에서 Savage River 지나 1~2마일 정도 더 갔다)를 달린 하루.


캠핑장에도 이제 이틀 전 보였던 눈은 간데없고 여름의 기운이 완연하다.

빙하가 녹아서 만들어지는 텍 강 (Teklanika River)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물줄기가 생겨나고 있었다.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모기가 우리를 습격하기 시작하는 걸 보니, 정말 이곳에도 여름이 왔나 보다.


차오르는 달을 보며, 땀으로 뒤범벅 되어 샤워가 그립지만, 캠핑 모닥불에 와인이랑 S'mores 먹으면 이게 캠핑하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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