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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핏의 꽃은 커냉

by 송기연

커냉은 짐작한 대로 '커피내기'의 줄임말이다.

물론, 5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나이에서는 저런 식의 줄임말을 일상적으로 쓰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속해 있는 쭌코의 오전반 멤버들은 일상적으로 쓰는 표현이다. 어쩔 수 없다는 핑계와 함께 은근슬쩍 그들과 함께 같은 표현을 쓴다. 남들은 바로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나 표현을 함께 쓴다는 것은 동질감을 나타낸다. 그래야 소속감도 느끼면서 동시에 안정감 비슷한 감정도 생긴다. 또 이런 말이 뭐가 있더라...




오늘도 WOD는 힘들었다.

매번 비슷하지만 오늘처럼 유산소와 웨이트 프로그램이 함께 있으면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오늘의 WOD는 200m 달리기와 클린 10개, 200m 달리기와 클린 8개, 200m 달리기와 클린 6개, 200m 달리기와 클린 4개다. 클린은 역도의 용상 동작이다. 바닥에서 허리 코어힘을 사용해서 어깨로 들어 올리는 동작이다. 달리기와 역도는 둘 다 하체에 부하가 걸린다. 얼핏 생각하면 팔이 아플 것 같은데 생각보다 숨이 찬다.


오늘 아침의 날씨는 거의 초겨울이었다.

땀이 뻘뻘 나는 날씨보다 달리기는 나쁘지 않았다. 시간도 딱 11분 짜리였는데 나는 8분 11초에 동작을 모두 수행했다. 두 팀으로 나눠서 진행했는데 앞 조나 뒤 조가 비슷하게 마무리됐다. 이런 날은 운동이 끝나고 나면 여지없이 커냉이다.


1652664608286l0.jpg 운동 후 마시는 아아의 맛이란..


크로스핏은 개인 운동이 위주다.

물론 2명, 3명이 짝을 이뤄서 하는 WOD도 많지만 어차피 개인에 맞는 무게와 동작 횟수가 있으니 개인 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비슷한 운동경력, 유사한 나이나 신체 조건과 함께 남다른 승부근성을 가진 크로스피터가 많다. 운동을 수행하는데 있어 좋은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자칫 무리한 무게나 동작으로 인한 부상의 위험 역시 존재한다. 나는 승부근성 같은 것은 거의 없다. 어느 정도 성공한 운동선수들은, 아니 대부분 '선수'라는 경험을 하는 대부분은 지독한 승부근성의 소유자들이다. 그런 성향과 거리가 있는 내 입장에서 볼 때는 저렇게까지 이겨야 하나 싶을 정도다. 물론 그렇지 않으면 운동을 계속 이어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튼 쭌코의 오전반에도 보이지 않는 라이벌이 있다.

피가 끓어오르는 청춘들, 여기에 테스토스테론이 넘쳐흐르는 수컷들은 순수한 힘과 테크닉, 정신력이 발휘되는 WOD는 아주 좋은 경쟁의 장인 듯하다. 무게 욕심, 횟수 욕심으로 나름의 기준을 항상 넘어선다. 그래야 실력이나 체력이 좋아지는 것은 인정. 나도 30년만 젊었더라면 혹시 모르겠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나는 타고난 기질로 볼 때 그런 것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운동에서 못다 한 승부는 커피로 이어진다.

WOD가 끝나고 땀에 젖고, 바닥에 널브러진 후 사람들의 눈빛이 바뀐다. 의례 누군가 "커냉 하시지요"라고 하면 피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처럼 한 곳에 모인다. 커피내기를 위한 종목은 다양하다. 단순하게는 가위바위보부터 제로게임, 동전 던지기, 신발 던지기 등 다양하다. 요즘 아이스커피는 한 잔에 2,000원이다. 보통 오전반에 오는 사람의 수가 많으면 10명이고 한 자리 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도 초창기에는 여기에 참여를 못 해서 쭈볏쭈볏했다. 여기는 나이가 많다고, 사회적 지위가 있다고 그냥 살 수 없다. 오로지 게임을 통한 내기를 해야 된다. 남녀도 나이도 아무런 제약조건이 없다. 그래서 의미가 있고 재밌다.

SE-e7df991d-8e70-4583-bd96-4e350e2a2830.jpg?type=w800 운명의 제로게임. 나름 요령도 있다


오늘은 새내기 간호사가 당첨됐다.

11명이 참여했으니 나름 출혈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커냉은 신기한 면이 있다. 신입 회원이거나 내향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한 번만 커냉에 참가하면 바로 무리에 섞일 수 있다. 여기에 그날 내기에 져서 단체 커피라도 사게 됐다면 멤버에 스며드는 속도는 더해진다. 코치가 걸리거나 연장자, 연소자가 걸리게 되면 늘 정석처럼 하는 말이 있다. 이 말도 초기 시작은 쭌코였다. 요즘은 패스오더 같은 어플로 커피를 주문하는데, 찾으러 갔다 오는 것도 커냉에서 진 사람의 몫이다. 이렇게 배달된 커피를 한 모금하면 버릇처럼, 모든 사람들이 외치는 그 말이 계속 들어도, 계속 말해도 재미있고 좋다. 실은 달달하지 않은 오리지널 아아다.


"오늘 커피 달달하네. 시럽을 왜 이렇게 넣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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