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앞, 가사일, 처갓집, 해변가, 술주정...
위 표현의 공통점은 의미 중복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은 표준어로 인정이 된다고는 합니다만 여전히 어색한 것은 사실입니다. 일부 디자인 전문회사 중에 '기획자'가 있는 곳이 있습니다. 원래 디자인(design)이라는 어원 내에 기획하다, 계획하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요. 그래서, 더욱 궁금해지는 디자인 전문회사 소속의 기획자는 어떤 일을 하며, 디자이너는 어떤 일을 할까요.
통상 디자인 전문회사의 기획자는 정말 '기획'을 합니다. 주로 편집을 하는 시각디자인 분야에 특화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획자는 종이 출판물(주로 책자)의 기획 전반에 걸친 업무를 담당합니다. 정기적 간행물의 경우에는 제호에 맞는 기사 작성 방향은 물론이고 인터뷰, 글쓰기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업무에서부터 페이지 수, 인쇄제작 부수, 지질, 배포 등과 같은 하드웨어적인 업무도 담당합니다. 그야말로 기획 그 자체입니다.
그럼, 디자이너(편집 디자이너)는 무엇을 하느냐고 하면, 아트워크(Artwork)만을 담당합니다. 기획자가 기획한 콘셉트에 따라 컴퓨터를 활용한 레이아웃 작업과 같은 업무를 수행합니다. 이런 시스템인 경우에는 디자이너가 클라이언트를 직접 대면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기획자를 통하거나, 도저히 소통이 안된다고 판단하면 기획자를 대동해서 함께 만납니다. 주로 작업물 Artwork와 관련된 부분에서만 합의가 된다면, 이후 기획이나 진행과 같은 부분은 다시 기획자가 세부적인 프로젝트 진행을 하게 됩니다. 좋게 본다면, 디자인 업무가 잘 분업화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이라는 어원 자체에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니, 기획과 계획을 세우고 방향을 정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Artwork는 도구적 개념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스템에 익숙해진 디자이너들은 기획자가 방향을 정해주지 않으면, 컴퓨터 마우스 클릭하나 하지 않습니다. 반복되다 보면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게 됩니다. 그냥 기획자의 의도에 따라 움직일 뿐 스스로 창의적인 계획이나 기획을 하지 않는 것이 default가 되어버립니다. 창의적이란 것은 기획자가 세운 콘셉트나 제작의도 내에서만 주어지는 "한정적 창의성"이 됩니다.
이런 기획자는 보통 국문학이나 신문방송 등 글쓰기를 전공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놀랍지도 않게, 국문학과는 글 쓰는 것이 전공이 아니지 않습니까? 엄연히 문예창작이란 분야가 있습니다. 인쇄편집디자인이나 기타 디자인이라도 클라이언트와 대화하고 조건을 맞추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일련의 일은 디자이너가 알아야 하고 관여해야 합니다. 그래야 설득력 있고 타당성 있는 '나의 디자인'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디자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하대 받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경우를 많이 접합니다. 그러나, 아주 일부의 경우라도 디자이너 스스로 자신의 영역을 한정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정리를 잘하고 꼼꼼한 성향의 직원이 디자이너와 함께 작업하는 것은 좋은 융합 사례가 됩니다. 기획자가 있는 디자인 조직에 속해 있다면, 그들의 영역이나 전문분야는 인정하고 협업하되, 디자이너 고유의 영역까지 넘기는 우는 범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자꾸 쓰지 않으면 퇴화합니다. 어렵고 번거롭더라도 갈고닦아야 할 디자이너의 자존감은 지키고 발전해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잘 닦고 기름칠해서 오래오래 쓰이는 디자이너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