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식어가는 순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안개의 움직임과 같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듯 보인다. 말투는 여전히 부드럽고, 표정은 익숙한 온기를 띤다. 그러나 어느 날, 당신의 말이 내 가슴에 닿지 않는 것을 느낀다. 우리의 대화는 강물이 아니라 얕은 웅덩이처럼 고여 있고, 그 속에서 맴도는 공허한 메아리만 들린다.
당신의 손끝이 닿는 순간조차 차갑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예전에는 온기가 스며들던 그 손길이, 이제는 무언가를 의례적으로 확인하듯 지나간다. 함께 있는 시간이 여전히 많지만, 우리는 더 이상 같은 공간에 있지 않다. 서로의 마음은 방향을 달리 한 두 배처럼, 점점 더 멀어지는 파도를 따라 흘러간다.
작은 일들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날카로운 기운을 남긴다. 예전에는 미소로 넘겼을 작은 실수가 이제는 견딜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온다. "괜찮아"라는 말속에 담긴 무력감이 점점 더 깊어진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 감춰진 무언의 벽이 서서히 높아지는 것을 본다.
사랑은 불꽃과 같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내가 느낀 사랑은 따뜻한 난로 같았다. 천천히 타오르고, 오랜 시간 동안 은은하게 머물렀다. 그러나 난로 속 불씨를 돌보지 않을 때, 그것은 어느새 사라진다. 연기는 흩어지고, 남은 것은 식어버린 재의 흔적뿐이다.
그러나 사랑이 식어가는 순간은 슬픔으로만 가득 차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를 잃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 시간이다. 텅 빈 공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무엇을 붙잡아야 하는지 묻는다.
사랑이 식어간다는 것은 끝이 아니라 변화를 의미할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그 안에 남은 재 속에서 새로운 불씨를 발견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것을 흩날리며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설까?
식어가는 사랑은 고통스럽지만, 그 속에서도 삶은 계속 흐른다. 그 고요한 순간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가장 진실된 마음으로 답을 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의 끝이라 해도, 혹은 새로운 시작이라 해도, 우리는 결국 모든 과정을 통해 성장하게 될 것이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