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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딜라 Oct 22. 2023

가을이 되면 생각나는 사람, 동주

High와 Low 사이에서  

잠 못 드는 이 밤,

혼자서 바라보는 별들,

코 끝이 선선해지는 이 온도,

가을이 되면 생각나는 사람이 동주인 것은

내가 외우는 시가 몇 편 안 되는 까닭이요,

가을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가 동주의 '별 헤는 밤'인 까닭이다.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생략)





'윤동주'


High로 가고 싶지만 쉽게 Low로 향하는 나는 캄캄한 하늘에 선명히 빛나는 별 하나를 한참 바라본다.

'동주, 어떤 마음이었어요? 어떻게 High로 갔어요?'

아마도  Low로 향하는 길에 브레이크라도 걸고 싶은 마음일 테다.


작년 이맘때, 나는 서울시로부터 윤동주문학관 투어 큐레이션을 의뢰받고 한 달 동안 윤동주문학관을 들락거렸다. 사실 이 작업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내 머릿속 동주의 이미지는 그저 '순수하고 나약한 청년시인' 정도였다. 그러나 한 달여 동안 그의 행적을 조사하면서 그것은 완벽한 고정관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역사가도 아니고 문학가도 아니지만, 그가 살아온 배경, 남겨진 기록물, 그의 작품 그리고 주변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윤동주는 High로 간 아름다운 인간이었다! 그때 나는 일을 떠나 윤동주라는 한 인간을 알게 된 것에 감사했다. 그러나 기억과 감동은 참 빠르게도 휘발된다. 왠지 그를 그리워하는 지금의 감정도 오늘 밤이 지나면 휘발되어 버릴 듯하다. 그래서 기록해 두려 한다. 이왕이면 좀 재미난 방식으로.  


그래서 그때의 현장감을 살려 나는 윤동주문학관 투어의 도슨트가 되고, 어떤 이유로든 나처럼 High와 Low 사이에서 갈등하는 당신은 게스트가 되어 동주를 만나러 떠나는 랜선여행을 해보려 한다. 이 여정 끝에 나는 내가 찾고 싶은 답을 찾길 바라고, 행여 그러지 못하더라도 당신에게 내가 알게 된 동주를 공유할 수 있으니 출발해 볼 만한 하다.




금요일 4p.m.


편두통에 시달렸던 하루, 아름답지 못한 걸 너무 많이 본 당신. 밀린 일은 과감히 덮어버리고 종로 1가에서 1020번 버스를 잡아 탄다. 늘 북적북적한 광화문에서 좌회전, 버스는 서촌으로 접어들었다. 서촌을 뒤로하고 언덕길을 올라 도착한 자하문고개. 길 건너 보이는 수수한 건물, 윤동주문학관이다.


길을 건너는 순간 우리의 여행은 시작된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 미셀오바마의 캐치프레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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