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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딜라 Oct 22. 2023

동주의 서사

피 냄새가 진동하는 전쟁시기

이곳은 총 3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어요. 지금 우리가 서있는 곳은 제1전시관. 이곳에는 윤동주 시인의 친필 시와 그의 시집, 그리고, 그가 간직했던 책들, 친필사인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관 중앙 사람들이 보고 있는 이것은 목재 우물틀. 중국 룽징(龍井)의 윤동주 생가에서 옮겨온 거예요. 방금 읽은 시, ‘자화상’ 속 사나이가 바라본 우물이었을까요?

서울뷰티트래블위크 팸투어 참가자들


윤동주는 1917년 중국 롱징龍井에서 태어났고, 비교적 시골지역인 명동촌에서 유년기를 보냈어요. 캐나다 선교사들이 설립한 은진중학교를 다니다가 1935년 만 18세에 평양의 숭실학교에 편입합니다. 같은 해 12월 기독교 학교인 이곳에서 일본이 요구하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 일로 교장은 파면되고, 1936년 학교를 자퇴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 후 윤동주는 20세에 연희전문학교(지금의 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해서 1941년 졸업했는데, 이 시기에 가장 활발히 창작활동을 했어요. 우리가 방금 읽은 시 '자화상'도 이때 쓰였어요. 원래 윤동주는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诗>를 졸업기념시집으로 출간하려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대신 시집 3부를 작성하여 한 부는 자신이 갖고, 다른 한 부는 스승에게, 나머지 한 부를 가장 친했던 학교후배에게 던내줍니다. 다행히 그 후배 정병욱이 그의 시집을 잘 보관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동주는 연희전문학교 졸업 후 다음 해인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가 명문대인 도쿄 릿쿄대학(立教大学) 영어영문과 입학했어요. 그러나 6개월 후에 교토시 도시샤대학교로 전학을 합니다.

윤동주의 일생


릿쿄대학의 학적부를 보면 '1942년 12월 퇴학'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학교에서 쫓겨나야 했던 건 “교련수업 거부” 로 보입니다. 일본의 군국주의 사상의 정점에 이른 시기에 '교련 수업 거부'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죠. 그 후 그는 불령선인(반항조선인)으로 지목되어 일본경찰의 감시를 당하다가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45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7세의 나이로 생을 마치게 됩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동주는 세계역사의 대격동기를 살았어요. 제1차 세계대전 기간이자 일제강점기인 1917년에 조선인 이민자로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20년을 보낸 동주, 그의 나이 열아홉, 1937년 7월 7일 아시아 최대규모의 전쟁인 중일전쟁이 시작됐습니다. 7월의 어느 날, 동주는 노구교盧溝橋사건을 들었던 것일까요? 또 시작된 전쟁소식에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는지, 7월 26일 쓴 시 [야행]의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저는 이 시에서 노구교 사건이 연상됐거든요. 


                            야행夜行

                                                    윤동주


정각! 마음이 아픈데 있어 고약을 붙이고

시들은 다리를 그을고 떠나는 현장

-기적이 들리잖게 운다.

사랑스러운 여인이 타박타박 땅을 굴려 쫓기에

하도 무서워 상가교上架桥를 기여넘다.

-이제로부터 등산철도

이윽고 사색의 포풀러턴넬로 들어간다

시라는것을 반추하다 마땅히 반추하여야 한다.

- 저녁 연기가 노을로 된 이후

휘바람 부는 햇귀뚜라미의

노래는 마디마디 끊어져

그믐달처럼 호젓하게 슬프다.

늬는 노래 배울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나보다

- 늬는 다리 가는 쬐꼬만 보헤미안

내사 보리밭 동리에 어머니도 누나도 있다.


그네는 노래 부를줄 몰라

오늘밤도 그윽한 한숨으로 보내리니....

1937. 7. 26.



                                   


다음 해 1938년 중국땅을 떠나 경성에서 진정한 인생 2막을 시작합니다. 동주는 새로운 여정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노래했지만 세상은 또 한 번의 전쟁소식으로 화답합니다. 곧이어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1939년). 그 전쟁은 끝내 그를 죽음으로 인도했어요. 그가 사망 후 불과 6개월 후 세계는 재편성됩니다. 1945년 8월 14일 일본은 항복하고 2차 세계대전은 끝이 났죠. 그로 인해 한반도는 식민통치에서는 해방됐지만 남북이 분단되는 또 다른 아픔을 겪게 됐고, 중국은 청에서 중화민국으로 이어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됐어요.


역사가 흔들리는 암흑기, 피 냄새가 진동하는 전쟁의 시기에 태어나고 돌아간 동주, 그래도 그때는 한반도가 나뉘기 전이라 동주는 한중일 동북아시아 대륙을 두루 오가며 학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윤동주문학관 열린 우물

다음은 2 전시실 '열린 우물'. 벽면을 올려다볼까요? 물탱크에 저장되었던 물의 흔적이 벽체에 그대로 남아있어요.  시선을 자연스레 하늘을 올려다보게 설계한 것 같습니다. [자화상] 시 속의 그 사나이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볼 것 같지 않나요?


이어서 3전시관 ‘닫힌 우물’.  이 공간은 온통 캄캄하죠. 그가 살던 세상이 이랬을까요? 이곳에서는 시인의 생애와 시세계를 담은 영상물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제 밖으로 나가 선선한 바람을 좀 쐬면 좋겠어요.


                    바람이 불어오는 곳, 시인의 언덕으로


시인의 언덕 가는 길


출발점에서 우리는 정체성이라는 키워드로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정체성 = 이름 + 외모 + 가치관 + 신념 + 특성


진짜 인간 동주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이제 이 관점으로 좀 더 깊이 파고들어 가 볼게요.  






노구교盧溝橋사건 (루거우차오 사건)

1937년 7월 7일 베이핑(현 베이징 시) 노구교 다리에서 야간 전투훈련 중이던 일본군 1개 중대의 머리 위로 10여 발의 총탄이 날아온 직후 일본군 사병 한 명이 행방불명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일본군의 자작극으로 벌어진 발포사건으로 알려져 있고, 중일전쟁의 발단이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과 중국은 전쟁 상태로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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