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월화 May 08. 2022

암환자의 장점

갑상선암의 종류와 유전자 돌연변이


수술 후 처음으로 간 외래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난다.

먼저 시행한 세침흡인검사 결과보다 수술 당시 떼어낸 조직을 분석한 결과가 더 정확하기 때문에,

수술 조직을 분석 결과를 토대로 진짜 암이 맞다면 확진이 된다.

확진이 되면 중증 등록도 이날 이루어져서 중증 환자로 분류되고 보험혜택도 받게 된다.



갑상선암의 종류를 나누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암세포의 기원에 따라 나누는 방법과, 세포의 분화 정도에 따라 나누는 방법이 있다.

여포 세포에서 기인한 암에는 유두암, 여포암, 미분화암 등이 있고, 여포 세포 외의 세포에서 기인한 암에는 수질암, 림프종 등이 있다.

분화도가 좋다는 의미의 분화암에는 유두암, 여포암이 포함되고 분화도가 나쁜 암은 미분화암 또는 역형성암이라고 부른다.

여포 세포에서 기인하며 분화도가 좋은 유두암, 여포암이 국내 갑상선암의 9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갑상선암 전체의 예후가 좋은 것으로 소문이 났지만,

여포 세포 외에서 기원하거나 분화도가 나쁜 암은 예후가 좋지 않고, 미분화암의 경우에는 5년 생존율 0%이다.



나는 세침 결과도 수술 결과도 동일하게 유두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 조직으로 유전자 돌연변이 검사를 하게 되는데, 분화암에서는 BRAF, RAS, RET/PTC 등을 검사하게 된다.

유전자 돌연변이 검사 결과와 암의 공격성과의 상관관계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BRAF 돌연변이가 갑상선 유두암의 초기 발생 기전이 됨과 동시에 불량한 예후인자가 된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정설이다. (Marina N. Nikiforova, et al., BRAF Mutations in Thyroid Tumors Are Restricted to Papillary Carcinomas and Anaplastic or Poorly Differentiated Carcinomas Arising from Papillary Carcinomas, J clin Endocrinol Metab 88:5399-5404, 2003)



갑상선 호르몬제, 진해거담제 등등이 포함된 처방전을 받아 약국으로 갔다.

약값이 19만 원 정도 나왔는데 나는 9천5백 원밖에 내지 않았다.

중증 환자라 본인부담금이 5%로 낮아졌기 때문이었다.

마치 나라에서 '내가 5년 동안 팍팍 지원해줄 테니까 완치하렴'이라고 응원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10대 때부터 개인적으로 유지해오던 건강보험과 실비보험이 있었다.

보험금을 가져갈 때와 달리 매우 깐깐한 심사과정을 거쳤지만 그래도 그동안의 치료비가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의 보상을 해주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양손 가득 약병과 약상자를 가지고 왔다.


"엄마!

약이 이렇게 많은데 나 9천5백 원밖에 안 냈어!

대박이지?"


하니까 어머니 눈이 동그래졌다.


"어머, 정말?

진짜, 대박이다!"



엄마는 나를 공부시키기 위해 평생 안 해본 것이 없다.

분식집, 포장마차부터 간병에 청소일까지 하루 24시간을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살았다.

우리 집에서 돈을 아꼈다는 것은 그만큼 엄마가 고생을 덜 해도 된다는 의미였므로 자랑할만한 일은 맞았을 것이다.

중증 혜택이 없었다면 괜스레 멜랑꼴리 할 뻔했던 확진일이 대박인 날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단점 속에서 장점을 찾는 것을 좋아해서, 지난 저서에서 '똥잡의 장점'에 대해 쓴 적이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별다른 장점 없는 걸로...)

앞에 언급된 중증 혜택, 보험 혜택 외에도 암환자의 장점이 또 있다면 의사결정의 기준이 바뀐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모든 일을 최소 투자, 최대 효율로 하던 내가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고 건강할지에 대해 고민한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우울감이나 부정적인 사고도 오히려 줄어들었다.

우울하다고 비관하기에는 남은 삶이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암에 걸린 딸이 대박이라며 양손 가득 약을 들고 집에 왔을 때,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19만 원의 약값을 다 내더라도 그냥 내 딸이 안 아픈 게 더 좋을 것 같다.

역시 그냥 조용히 방으로 들고 갔어야 했다.

아직도 철이 덜 들었다.

그러니 철들 때까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 테다.



이전 13화 나에게 착한 사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