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자아이들과 제법 잘 어울리는 편이었다. 관심 분야가 다양해 여러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걸 좋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극 내향형으로 변화한 지금에 비하면 꽤나 활발한 아이였다.
그렇다 보니 6학년 우리 반에서 기억에 남는 남자아이들이 몇몇 있다. 남편도 그들 중 하나였을까?
A는 외모가 준수해서 인기가 많았다.
본인도 어느 정도의 인기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을 텐데, 외외고 착하고 순수해서 놀란 적이 좀 있었다. 공교롭게도 A와 친해진 것은 3월 14일 화이트데이였다. 방과 후에 잠깐 시간이 되냐고 묻길래, 된다고 했다.
'오~ 뭐지?'
괜스레 설레었다.
"이거 영수(가명)가 주래. 네가 완전 자기 스타일이라고 하던데?"
A는 아기자기하게 포장된 선물을 건네주며 말했다. 딱 봐도 사탕이었다.
'아, 뭐지?...'
과묵해보이는 영수(가명)와는 대화 한번 나눠 본 적 없었기에 조금 당황스러운 데다 잠시마나 망상을 떨었던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애써 감추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어정쩡하게 사탕을 손에 들고는 A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의외로 순수한 편이라는 생각이 든 것도 이 날인 듯하다.
B는 똑똑하고 젠틀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13살에 신사적이라니 약간 과장된 표현인 듯 하지만 실제로 그랬다. 이미 세상의 질서를 알고 있는 듯했고, 처세에도 좋았다. 지식도 풍부했고, 말투에 자신감도 있었다. 공부도 곧 잘해서 눈에 띄는 아이였다.
아마도 임원을 했었던 것 같다.
B는 우리 반에 좋아하는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내가 그 아이와 친하다는 이유로 종종 전화를 걸어와 잘 되게 해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B는 A와 단짝이라 항상 붙어 다녔기에 나와 셋이서 통화한 날도 많았다. 대화 내용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우리 셋은 말이 잘 통했던 것 같다.
C는 착하고 친절했다.
당시 나는 공부는 잘했지만, 티 안 나게 덤벙 대는 스타일로 연필을 안 깎아 오거나 지우개를 안 가져오는 일이 허다했다. C는 그때마다 수줍은 표정으로 자기 거를 쓰라며 학용품을 내밀었다.
학기말에 짝을 하고 싶은 이성 친구 이름을 5 지망까지 적어서 매칭을 하는 이벤트를 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선생님의 마지막 졸업 선물이었던 것 같다. 나는 누구누구의 이름을 적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이때 C와 짝을 한 걸 보면 서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순위에 자리했었나 보다.
D는 학년 말 연극 축제 때 우리 팀이었다.
연극에서 둘만 등장하는 장면이 있어 학년 말이 되어서야 친분이 생겼다.
그 당시의 나는 뭐든 열심히 하면서 눈에 띄고 싶어 하는 아이라서, 극본도 직접 쓰고 연출까지 도맡아 했는데 남자아이들 중에 가장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던 D는 순둥순둥한 성격 덕분인지 나의 요구에 순순히 따라주었다. (요구라고 해봤자 목소리 크기, 들어오고 나가는 동선 이런 정도였지만 나는 나름 진지했다)
D는 매일 학교에 축구공을 들고 다녔다. D를 비롯한 몇몇 아이들은 아침부터 운동장을 뛰어다닌 것인지 조회 시간이면 땀에 흠뻑 젖은 채 교실로 들어오곤 했다. 언젠가 도대체 학교에 몇 시에 오는 거냐고 물어봤더니 7시에 온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