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ove School을 통한 동창 찾기가 유행하던 시절, 우리 반 친구들도 하나둘씩 서로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늦게 합류한 편이었지만 어제 만난 친구들처럼 즐겁고 편안해서 자주 모임에 나갔다.
"지난번에 A 왔다 갔다면서? 걔는 꼭 12시 넘어서 오더라."
"여전히 잘생겼냐?"
"여자 친구가 연예인 누구 닮았던데."
한 번은 A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는 동창회에 나온다 해도 느지막이 얼굴을 비치는 정도였던 것 같다. 나는 집이 멀어 항상 12시 이전에는 자리에서 일어났기에 몇 년이 지나도록 A를 만나 볼 기회는 없었다.
자주 나오지도 않는 데다 마치 연예인이나 셀럽처럼 잠시 들르는 그가 궁금해졌다. 성인이 된 A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오늘 B가 온대"
그가 참석한다는 소식은 큰 뉴스였다. 우리는 뉴페이스(엄밀히 말하면 New는 아니지만)가 올 때마다 설레었고 반가웠다. 어떻게 변했을까? 그 모습 여전할까?
B는 얼굴도 체형도 그대로였다. 다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라 긴장을 했는지, 생각보다 대화나 행동이 소극적이었다. 사실 뉴페이스는 그날의 주인공이기에 모든 시선이 쏠리기 마련이라 살짝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는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리더십이 있고 사회성이 좋았던 어릴 때와는 많이 달라진 캐릭터가 조금은 의외였다.
이날 B가 많이 취해서 내가 함께 택시를 타고 데려다주기로 했다. 뒷자리에 나란히 앉은 우리. 얼마 지나지 않아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B가 내 손을 살며시 잡고 있었다.
'이 자식, 많이 취했구나.'
초등학교 동창 사이는 형제 관계와 다름없다는 생각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기억하는 걸 보면 순간 흠칫했던 건 아닐까?
"C가 귀국했대. 모임에 나오기로 했어."
이번에는 C 소식이었다. 외국에서 유학 중인 C가 방학에 맞춰 한국에 들어온 것이다. 술자리에 나타난 C는 정말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수줍은 표정과 조곤조곤한 말투가 어찌 그리 똑같은지. 대화를 하면서도 너무 편해서 할 말 안 할 말 다 했던 기억이 있다.
다만 그날은 방학 중이었기에 유난히 동창생들이 많이 참석했고, 일부는 다른 반 친구들까지 데리고 나와 그 규모가 족히 20-30명 되었다. C와의 재회는 반가웠지만 긴 시간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D는 모임의 핵심 멤버였다.
모임이 있을 때마다 친구들은 서로에게 물었다.
"오늘 D 나온대?"
"응 이따 온대."
내가 기억하는 D는 공만 차는 순둥순둥한 아이였는데, 성인이 된 그는 얼굴과 체형은 물론 성격까지 변한 듯했다. 동그란 얼굴은 길어졌고 작았던 키는 평균을 훨씬 넘을 만큼 훌쩍 자라 있었다.
운동장에서 뛰어노느라 여자아이들과는 어울리지 않았던 애가 능글맞기까지 했다. 나올 때마다 유쾌한 분위기를 주도했다. 알고보면 재미있는 친구였구나.
이렇게 다시 만난 우리들.
순수한 마음은 그대로였지만 어느새 남자 또는 여자가 되어 있었다. 20대의 혈기 왕성한 우리는 더러는 짝을 찾으려 했고 사랑을 구했으며, 누군가는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늘 관심사는 과연 누가 제1호 공개 커플이 되는가였는데, 모임 때마다 '카더라' 통신을 이용해, 누구랑 누구랑 몰래 데이트를 하는 것 같다, SNS(싸이월드)의 대화 내용이 심상치 않더라, 둘이 영화라도 본 건 아니냐며 추리를 해나가다, 급기야는 어린 시절까지 소환해 그때부터 둘이 친했다는 둥 상상 속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몇 년 동안 공식 커플 탄생 소식은 전해지지 않자, 한 친구는 이거 이거 너무한 청청 지역이 아니냐며 "커플 추진 위원회"라도 만들 기세였고, 한쪽에서는 우리가 이렇게나 서로 경쟁력이 없던 사람들이었냐며 소주를 들이켰다.
나는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유치함이 좋았다. 코흘리개 시절 만난 친구들이기에 가능한 대화와 분위기였으니까.
나 역시 남자아이들 중 일부와 1대 1로 연락을 하거나 단둘이 술을 마시기는 했는데, 이성으로서는 아무 감정이 없었으니 가슴 콩닥거리는 뭔 일이 일어날 리 만무했다. 게다가 굳이 둘만 만날 필요도 없었기에 놀다가 다른 친구들을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순수를 잃어가고 있던 것일까? 아니면 어느덧 사랑할 나이가 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