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공감능력

by 소정

둘째는 공감능력이 뛰어난 것 같다.

주변 사람의 사소한 몸짓이나 말 심지어 관계 속에서의 미묘한 공기도 느낀다.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건 아닌지 친구들에게 끌려다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기도 하였다.

"엄마~ 오늘 친구가 내 마음을 잘 몰라줬어요."

"아빠~ ㅇㅇ가 ㅁㅁ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요.. ㅁㅁ는 마음이 여리거든요."

라고 말하는 걸 보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엄마, 오늘 A랑 B랑 같이 놀았는데요. A랑 B가 싸웠어요."

"어, 정말? 그래서 어떻게 했어?"

놀란 아내의 물음에 작은 딸은 담담했다.

"일단 서로 집에 가서 저도 집에 왔어요."

"아, 그랬구나."

"근데 엄마, A는 놀 때 자기가 하고 싶은 건만 해요. 저는 그래도 친구니까 A랑 놀았는데, B는 A가 마음대로 한다고 해서 화를 냈어요."

그림을 그리다가 둘째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러더니 A가 친구인데 그것도 못해주냐고 하고 B도 싫다고 하고 소리 지르며 싸웠어요. 그래서 그냥 헤어지고 집에 왔어요."

"해령이는 어때?"

"음... 저는 A가 마음대로 하자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지만 친구니까 A랑 B가 다시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A랑 B에게 전화를 하려고요."

"전화해서 뭐라고 하려고?"

"잘은 모르겠는데 A에게도 위로해 주고 B에게도 위로해 줘서 서로 다시 친하게 지내게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둘째는 A와 B의 갈등이 계속 신경 쓰이나 보다. '친구'이기 때문에 함께 오해를 풀고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큰 것 같다.

부모인 우리는 혹시나 작은 아이가 A와 B에게 전화해서 각자의 처지만 옹호하다가 오해를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부터 앞섰다.

"해령이가 A랑 B에게 전화해서 다 괜찮다고 잘못 없다고 하면 친구들은 자기편을 들어줬다고 생각할 텐데... 나중에 다 만나면 네가 이 친구 저 친구 모두 편을 들어줬다고 너를 미워하면 어떡해?"

"그래도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저는 친구들이랑 재밌고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라며 자기 방에 들어가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둘째는 막내라 그런 건지 아니면 태어났을 때부터의 기질이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은 것도 나누는 것도 좋아한다.

학원에서 사탕이나 젤리를 받아 오면 반을 떼어 언니 자리에 놓아두기도 하고

내가 과자나 껌을 사주면 일단 내 입에 먼저 넣어주고 자기가 먹는다.

학교에서 이벤트 당첨으로 받은 학용품이나 책갈피 같은 작은 것들도 아내를 위해 따로 챙겨둔다.

친구들끼리의 관계에서도 그런 것 같다. 장을 보고 와서 간식을 정리하고 있으면

"엄마, 이 과자 내일 친구들이랑 나누어 먹어도 돼요?"라고 묻는다.

'다꾸 세트(다이어리 꾸미기 세트)'로 무언가를 만들어 다음날 자기를 도와준 친구에게 선물한다.

'혹시 퍼주기만 좋아하는 아이가 되면 어떡하지?', '친구가 사달라고 맨날 사주면서 정작 자기는 실속 없는 아이가 되어 버리면 어떡하지?'

라고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부모란 항상 최악의 상황까지 걱정하는 존재이기에 그려려니 하고 기다려주기로 다짐한다.


둘째의 공감능력 중 최고의 순간은 아이가 부모의 마음을 먼저 읽어줄 때인 것 같다.

내가 직장에서 치이고 사람에게 뜯기고 스스로에게 좌절할 때

나의 표정, 말투, 몸짓을 보고 평소와는 다름을 눈치채는 것 같다.

내 옆구리를 찌르고 웃으면서 장난을 치기도 하고 컴퓨터에 앉아 일을 하고 있으면 조용히 뒤로 와서 어깨를 주물러 준다.

목욕을 하고 나서는 '아빠!' 하며 엉덩이 춤을 추고 자기 전에는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내게 보여준다.

둘째의 '아빠 기 살리기' 작전에 나도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이런 우리 작은 아이가 어떻게 커갈지 기대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한다.

주변을 챙기다가 오해가 생겨 오히려 독이 되는 건 아닌지

아이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지는 않을지

다양한 군상들이 모여 있는 인간관계에서의 여러 문제와 고난은 필연적이기에 그 길을 먼저 겪은 부모로서는

아이가 혹시 그런 아픔을 겪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먼저 앞선다.

부모는 자기 자식만 보인다고 하더니 나도 내 자식만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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