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내리네
수선화 잎사귀가 휘어질 만큼*

노는(遊)신부의 대림절 ‘함께 걷는 기다림’

by 교회사이


대림절 두 번째 주 수요일, 기다리며 읽는 마태복음서 (11)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런 지혜와 그 놀라운 능력을 얻었을까? 이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는 분이 아닌가? 그의 아우들은 야고보와 요셉과 시몬과 유다가 아닌가? 또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와 같이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사람이 이 모든 것을 어디에서 얻었을까?” (마태복음서 13:54-56)



내가 살아온 날들 그 시간에서 멈춘 사람들입니다. 내가 아는 거기에서 그만 멈춘 사람들입니다. 내가 알았던 그 사람, 내가 아는 그 사람, 거기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지 않고 그냥 거기에서 멈춘 사람들입니다. ‘거기까지면 충분하다’, ‘나는 다 안다’ 하며 딱 거기에 멈춘 사람들입니다. 요지부동의 사람들입니다.


첫눈과 수선화 3.jpg photo by noneunshinboo


“어, 내가 아는 사람인데!”

고향 사람들이 놀랍니다.


“아, 왜 나를 모르지?”

놀라는 고향 사람들을 보시고 예수께서도 놀라십니다. (막 6:2, 6)


고향 사람들은 그 높고 깊은 지혜와 온갖 기적을 일으키는 그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는 ‘잘 아는’ 고향 사람 예수에게 놀라고, 예수께서는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는 그 ‘잘 모르는’ 고향 사람들이 놀랍습니다.


“그는 세상에 계셨다.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요한복음서 1:10-11)

요한 사도가 한 말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요 1:12)


예수를 달갑지 않게 여긴 동네 사람들. 그를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는 고향 사람들. 안다, 잘 안다 했던 것이 오히려 더 알 수 있고 더 알아가는 길, 깨달음의 길을 가는데 방해가 되었다는 사실을 그땐 몰랐습니다. 너를 안다고, 너무나 잘 안다고, 너뿐 아니라 네 부모, 네 가족도 잘 안다고, 그래서 도무지 알려고 하지 않으니, 믿으려 하지 않으니 예수께서도 달리 뾰족한 수가 없으셨던 모양입니다.


“어디서나 존경을 받는 예언자도 제 고향과 제 집에서 만은 존경을 받지 못한다.” (마태복음서 13:56, 공동번역)

그래서 몇몇 아픈 사람들에게 손을 얹어서 고쳐 주신 것 밖에는 거기서 더는 아무 기적도 행하실 수 없었습니다(막 6:5).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런 지혜와 그 놀라운 능력을 얻었을까? 우리가 아는 그 목수의 아들, 마리아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아우들도 우리가 다 아는데, 그런데 어디에서 이런 지혜와 능력을 얻었을까?”


질문이 잘못되었습니다.


“내가 지금 보는 이 예수는 누구인가? 권위있게 가르치고 높은 지혜를 보여주며 많은 기적들을 행한 이 예수는 정말 누구인가? 나는 이 예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이렇게 질문을 했어야 했습니다.


‘모른다’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안다’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난 다 아는데 더 알 필요가 뭐가 있어’ 하고 안그래도 뻣뻣한 고개 더 치켜세우고 멈추는 것이 문제입니다. ‘제발 가르쳐 주십시오 난 모릅니다’ 하며 가는 길 막아서고 고개 숙이고 묻고 또 묻는 것이 문제일 수 없습니다.

겸손입니다. 모른다 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그 분을 잘 안다, 다 안다, 저 역시 말할 수 없습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제 속으로만 하는 말이 아닙니다. 겉으로도 대놓고 뻔뻔스럽게 하는 말입니다. 저와 대림 절기를 함께 지나고 계신,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께서는 벌써 아실 것이라 짐작 아닌 확신을 합니다. 겸손이 될 수 없습니다. 사실입니다.


첫눈과 수선화 2.JPG photo by noneunshinboo


어제 밴쿠버에 눈이 내렸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밴쿠버의 첫 눈입니다. 많지 않은 눈이었습니다. 맛보기입니다.


그리고 바쇼의 하이쿠*俳句) – 선시(禪詩) – 입니다.


첫눈 내리네

수선화 잎사귀가

휘어질 만큼


수선화에 첫눈이 내렸습니다. 내린 눈에 잎사귀가 휘어질 딱 그만큼 첫눈이 내렸습니다. 눈에 보입니다. 깊습니다. 고요합니다. 그리고 아름답습니다.


어제 밴쿠버에 내린 첫눈이 저에게는 얼마 만큼이나 내렸을까? 안다, 조금 안다 하는 나의 그 뻣뻣한 목이 그 내린 첫눈 만큼만 휘어지면 좋을텐데. 억지 겸손이라도 하다 보면 버릇이 되고, 그러다 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제가 저에게 갖는 바람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 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12)


나보다 더 나를 아시는 분, 그분을 온전히 알게 되길 소망합니다.

그분을 기다립니다.



* 마쓰오 바쇼(1644~1694)의 하이쿠입니다. 바쇼는 일본 에도 시대의 하이쿠 시인으로 ‘하이쿠의 성인’이라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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