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에게 유령이 아닌
기적이 되면

노는(遊)신부의 대림절 ‘함께 걷는 기다림’

by 교회사이


대림절 두 번째 주 목요일, 기다리며 읽는 마태복음서 (12)


“제자들이 탄 배는, 그 사이에 이미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풍랑에 몹시 시달리고 있었다. 바람이 거슬러서 불어왔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로 가셨다. 제자들이 . . . 겁에 질려서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서 소리를 질렀다. 예수께서 . . . “안심하여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 . .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갔다. 그러나 베드로는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고,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물에 빠져 . . . “주님, 살려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께 곧 손을 내밀어서, 그를 붙잡고 말씀하셨다.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였느냐?” (마태복음서 14:22-33)


유령아닌 기적 2.JPG photo by noneunshinboo


저는 수영을 못합니다. 그래서 물이 편하지 않습니다. 배 위에서도 가능하면 먼 곳을 봅니다. 물이 내 아래에 있다는 사실이, 깊이를 모를 그 물 위에 내가 있다는 것이 사실 편치 않습니다. 물에 빠지면 혹시나 싶어 구명 조끼가 어디에 있는지 살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물이 불편한 저는 ‘물 위를 걸을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당연히 그럴 수 없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믿음이 적고 의심이 많아서?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이러다 정말 죽는게 아닌가, 제자들은 두렵습니다. 순풍에 돛을 달기는 커녕 이만저만 역풍도 아니고 풍랑도 너무 거셉니다. 물이라면 이골난 제자들도 여간 힘에 부치는 게 아닙니다. 당장 물 위로 내려 걷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평생 뱃사람으로 이력이 붙었어도 배를 타는 사람이지 물 위를 걷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물로 뛰어들어 헤엄칠 상황도 아닙니다.

그때, 저기 그 물 위로 걸어오는 무엇이 보입니다.


“유령이다!”




우리 사람의 몫은 물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물 안을 헤엄치는 것입니다. 물 위가 아닌 물 안을 걷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 물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닙니다. 사람이 물 안을 물고기처럼 헤엄치는 것, 물 안을 자연스럽게 걷는 것이 기적입니다. 사람이 땅 위를 걷듯 물 위를 걷는 것, 그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그것이 기적이 아닙니다. 사람이 물 안을 걸으며 잠깐 잠깐씩 물 밖으로 고개 내밀어 입 다물지 않고 숨을 쉬는 것, 그것이 기적입니다. 사람이 물새나 된 듯 물 위를 걷고 뛰는 것이 기적이 아닙니다.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 그 물에 뛰어드는 것, 그 빠진 사람을 구해 함께 물 밖으로 나오는 것, 그 물이 무서운 사람에게 다시는 빠지지 않도록 혹 빠져도 헤엄쳐서 나올 수 있도록 그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 그것이 기적입니다.


믿음이 없어 물 위를 걷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어 물 위가 아닌 물 안을 걸으며 그 물 안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사실 기적입니다.


사람인 우리가 물 위를 걷는 것은 나중 일입니다. 때가 되면, ‘그 때’가 되면 분명 우리는 물 위를 걸을 것입니다. 걷다 못해 뛰고 뛰다 못해 그 위를 날아다닐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저 어릴적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집으로 오는 길입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너무 늦겠다 싶어 지름길로 알고 숲길을 걷습니다. 그 옛날 대로변에 조차 전봇대 불빛이 변변하지 못한 시절 당연히 칠흙 같이 어두운 숲길입니다. 가끔 오가던 인적도 끊긴 어둔 시간, 어떤 기척이 있다면 그게 더 무서운 짙고 짙은 어둠 속 숲길입니다. 그땐 사람이 사람에게 제일 무섭다, 그러셨습니다.

정말 사람이 사람에게 유령이 될 수도, 되기도 하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유령아닌 기적 3.jpg photo by noneunshinboo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될 수 있을까요?*


사람이 한 없이 따뜻할 수도, 끝 없이 차가울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선택입니다. 어둔 밤 차가운 숲길을 걷는 서로에게 숨어 기다리는 유령이 아니라, 환하고 따뜻한 온기의 기적이 되는 선택은 늘 내 앞에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지금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십니다.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사랑’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사람에게 기적이 되시어 물 위를 걸어 오십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됩니다.


“유령이다!”

“나다,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유령이다!

아니, 기적입니다.



왜 그렇게 ‘믿음’이 적으냐?

왜 그렇게 ‘소망’이 적으냐?

그리고, 왜 그렇게 ‘사랑’이 적으냐?


물 위를 걸을 수 있다 하는 그 믿음, 물 위를 걷고 싶다 하는 그 소망, 그 모든 마음들은 잠시 속여 두고 그 물 안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부는 바람 치는 파도 무섭고 깊이 모를 물 안이 두려워 그 물 안이든 밖이든 사는 것이 힘겨운 이웃들에게 내 손 내밀어 그 손 붙잡고 그 물 안을 함께 걸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이 없다면 물 위를 걸어도 사람이 사람에게 유령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물 위는 걷지 못해도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됩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유령이 아닌 기적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사람에게 기적이신 예수께서 저기 오십니다.



*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오랜만에 만나는 아름다운 드라마, 참 아름다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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