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음을 품으라

노는(遊)신부의 대림절 ‘함께 걷는 기다림’

by 교회사이


대림절 두 번째 주 금요일, 기다리며 읽는 마태복음서 (13)


“저 무리가 나와 함께 있은 지가 벌써 사흘이나 되었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가엾다. 그들을 굶주린 채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가다가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른다. . . .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 . . 무리에게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나서, 빵 일곱 개와 물고기를 들어서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주었다.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나서 남은 부스러기를 주워 모으니, 일곱 광주리에 가득 찼다.” (마태복음서 15:32-39)



이게 정말일까, 아닐까? 실제 일어난 일이었을까, 아니었을까?

그러는 사이 이천 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십이월이 되었습니다. 누구는 이게 더 중요하다 하며 이것에 매달리고, 누구는 저게 더 중요하다 하며 저것을 붙잡고, 그러다가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러다가 정말 필요한 일,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요?


측은지심 2.JPG photo by noneunshinboo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군중을 보시고 예수께서 불쌍한 마음이 드셨습니다. 거기 모여든 많은 아픈 사람들을 보시고 예수께서 측은한 마음이 드셨습니다. 사흘 동안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한 많은 사람들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너무 불쌍한 마음이 드셨습니다.


“여긴 외딴 곳입니다.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저들이 알아서 제각기 먹을 것을 사서 먹도록 마을로 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마 14:15)

제자들의 옳은 판단, 빠른 대처로 보입니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입니다. 딱히 틀리다 할 수 없습니다 .


“가다가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는데 굶겨 보내서야 되겠느냐?”


“그렇다고 여기서 이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일 만한 빵을 무슨 수로 구하겠습니까? 각자 사먹도록 하는게 낫습니다. 배고픔은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할 일이지 사실 우리가 어떻게 해 줄 일이 아닙니다. 옛날부터 배고픈 문제는 나랏님도 어쩌지 못한다 하지 않습니까? 그건 각자가 알아서 해결하게 두시고, 나중에 다시 모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저희라고 배고픈 저들 사정을 왜 모르겠습니까? 저희도 저들이 정말 불쌍합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서둘러 저들을 보내려는 겁니다.”

이유있는 항변입니다. 제자들에게도 나름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도 조금 억울합니다. 조금 항의도 섞습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

여기 정말 중요한 것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그냥 드는 마음이 아닙니다. 그냥 가만히 있는 마음, 그냥 불쌍히만 여기는 마음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 감추어진 마음이 아닙니다. 측은지심은 보이는 마음, 드러나는 마음입니다.


“그들을 보낼 것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예수께서 그들을 보십니다. 불쌍한 마음이 드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아픈 곳을 고쳐주십니다. 그들의 고픈 배를 부르게 하십니다. 그들의 마른 목을 축이십니다. 그들의 고단한 육신이 쉬어 가도록 그늘을 드리우십니다. 그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려 말벗이 되어 주십니다. 그들의 마음의 허기, 영혼의 허기를 채워주십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당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측은지심 3.JPG photo by noneunshinboo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당신은 나와 다르지 않고 나는 당신과 다르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불쌍히 여깁니다’ 하며 갖는 마음(心), ‘내 것을 당신과 나누겠습니다, 같이 가겠습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하며 속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말(言), 그리고 ‘여기 있습니다’ 하며 기꺼이 즐겁게 함께 나누는 것(行), 그 모두가 하나(一致)가 되는 마음입니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불쌍히 여기는 ‘예수의 마음을 닮아간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그 예수의 마음을 의지하고 그 마음을 내 안에 담는 것입니다. 소망은 그 예수의 마음이 내 안에서 더 크게 자라기를, 그 마음을 내가 이 땅에서 살기를, 그리고 그 마음 안에서 내가 영원히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그 예수의 마음이 나의 밖으로도 나오는 것, 나의 밖에서도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 .” (빌립보서 2:5-11)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그 마음 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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