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遊)신부의 대림절 ‘함께 걷는 기다림’
대림절 네 번째 주 금요일, 기다리며 읽는 마태복음서 (27)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그런데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말하였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 . . ‘너 유대 땅에 있는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가운데서 아주 작지가 않다. 너에게 통치자가 나올 것이니, 그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이다.’ . . . 동방에서 본 그 별이 그들 앞에 나타나서 그들을 인도해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에 이르러서, 그 위에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무척이나 크게 기뻐하였다.” (마태복음서 2:1-10)
시인 허만하의 시(詩) <낙타는 십리 밖에서도>* 입니다.
길이 끝나는 데서
산이 시작한다고 그 등산가는 말했다
길이 끝나는 데서
사막이 시작한다고 랭보는 말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구겨진 지도처럼
로슈 지방의 푸른 언덕에 대한
향수를 주머니에 꽂은 채
목발을 짚고 하라르의 모래바다 위를
걷다가, 걷다가 쓰러지는 시인
모래는 상처처럼 쓰리다
시인은 걷기 위하여 걷는다
낙타를 타고 다시 길을 떠난다
마르세이유의 바다는
아프리카의 오지까지 따라온다
눈부신 사구. 목마름, 목마름
영혼도 건조하다
원주민은 쓰레기처럼 상아를 버린다
상아가 되어서라도 살고 싶다
바람은
미래 쪽에서 불어온다
낙타는 십리 밖에서도
물냄새를 맡는다
맑은 영혼은 기어서라도 길 끝에 이르고
그 길 끝에서
다시 스스로의 길을 만든다
지도의 한 부분으로 사라진다
‘사막을 가는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
깊은 울림을 주고 오랜 여운을 남기는 아름다운 말입니다.
낙타가 그 멀고 긴 모래의 바다를 건널 수 있는 것은 물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기어서라도 그 길 끝에 이르고, 거기 멈추지 않고 다시 스스로 길을 내고 또 걷는 낙타는 그 십리 밖 물냄새를 기억합니다. 등에 진 한 짐,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것 역시 그 십리 밖 물냄새 때문입니다.
바람은 내일로부터 불어오고, 낙타는 십리 밖에서도 물 냄새를 맡고, 맑은 영혼은 기어서라도 길 끝에 이르고, 그리고 그 길 끝에서 멈추지 않고 영원으로 이어진 길을 걷고 또 걷고, 영원의 지도 그 한 부분으로 사라져 갑니다.
시인은 묻습니다.
시인이 맡는 십리 밖 물 냄새의 정체는 무엇일까.**
저는 묻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맡는 십리 밖 물 냄새의 정체는 무엇일까.
먼 동쪽으로부터 동방박사들과 함께 모래의 바다를 건너 온 그 낙타들도 십리 밖 물 냄새를 맡았을까? 동방박사들도 십리 밖 물 냄새를 맡았을까? 그래서 저 긴 사막의 길을 건널 수 있었을까? 그들은 어떤 물의 냄새를 맡았을까? 시인의 낙타가 맡았다는 그 물의 냄새일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 (요한복음서 4:14)
그들이 보았던 그 별은 어떤 별이었을까? 그들이 타고 온 낙타도 그 별을 보았을까? 그 십리 밖 별 냄새도 맡았을까?
“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요 1:9)
그들이 건넜던 그 모래의 바다 길은 어떤 길이었을까? 그들은 알았을까, 지금 건너고 있는 이 길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들은 십리 밖 그 길도 보았을까? 맡았을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 14:6)
낙타가 맡았던 그 물 냄새는 아니어도,
동방박사들이 보았던 그 별은 아니어도,
그들이 함께 걸었던 그 모래의 바다 길은 아니어도,
우리는 지금,
어떤 물 냄새를 맡고,
어떤 별을 보고,
어떤 길을 걷고 있나요?
생명의 물, 생명의 별, 생명의 길, 오십니다.
* 허만하의 시집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중에서
** 허만하의 산문집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