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예수,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노는(遊)신부의 대림절 ‘함께 걷는 기다림’

by 교회사이


대림절 네 번째 주 화요일, 기다리며 읽는 마태복음서 (24)


“당신도 저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다닌 사람이 아니오.” . . .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 . .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다니던 사람이오.” . . .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 . . “당신은 틀림없이 그들과 한패요. 당신의 말씨를 보니, 당신이 누군지 분명히 드러나오.” . . .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마태복음서 26:69-75)


외로운 예수 2.JPG photo by noneunshinboo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인데, 이렇게 너희는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느냐?” (마 26:38, 40)


얼굴을 땅에 묻고 피눈물로 홀로 기도하시는 예수, 거기 있기는 있으나 거기에 없는 제자들.

외로운 예수입니다.


“그때에 제자들은 모두, 예수를 버리고 달아났다.” (마 26:56)


저기 칼과 몽둥이를 들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무리들에 의해 홀로 끌려가시는 예수, 거기 그 모습 다 보고서도 또 누구는 보지도 않은 채 저기 멀리 달아난 제자들.

참 외로운 예수입니다.


그리고, 여기 죄인처럼 끌려가 저들의 취조와 고문과 모욕과 멸시와 희롱과 조롱을 온 몸으로 홀로 견디고 계신 스승 예수, 거기 안뜰 바깥쪽까지 가긴 갔으나 더는 차마 가지 못하고 밖에서 머뭇거리고 서성거리며 그래도 나름 수석 제자라고 스승에 대한 의리 지킨다고 지키고 있는 제자 베드로가 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너무 외로운 예수입니다.


저 멀리서 기다렸다는 듯 닭이 울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


이제 닭도 제 할 일 다 했다고 그 정도면 되지 않았느냐고 더 이상 울지 않습니다. 허겁지겁 바깥으로 빠져 나온 베드로가 대신 저쪽에 숨어 웁니다. 그것도 몹시 울었다고 합니다.


지금 외로운 예수만큼 베드로는 외로울까요?

지금 슬픈 예수만큼 베드로는 슬플까요?




스승을 외롭게 만든 건 제자들입니다. 외로운 스승을 버려두고 나 살겠다 도망친 건 저 제자들입니다. 지금 저 힘든 길을 홀로 외롭게 가시도록 한 건 저 제자들입니다.

그 스승이 보이는 먼 발치서도 아닌 보이지도 않는 곳에 숨어 그나마 크게 소리내어 울지 못하고. 그 닭 울음소리를 듣고 내가 그리고 우리가 무슨 짓을 했는지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는지 겨우 알았지만 그렇다고 어떤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그래서 이래저래 너무 힘들다고 저 난리인 제자들. 그들을 지금 저렇게 슬프고 외롭게 만든 건 또한 저 제자들, 그 자신들입니다.


그런데, 이젠 앞으로 저 제자들은 어디 누구를 찾아가야 닭의 울음소리를 빌리지 않고도 자기들이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 깨달을 수 있을까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누구를 잡고 실컷 울 수 있을까요?


외로운 예수 3.JPG photo by noneunshinboo


그때 외로웠던 그 예수만큼 지금 우리는 외로운가요?

그때 슬퍼했던 그 제자들만큼 지금 우리는 슬픈가요?


지금 여기 아무리 둘러봐도 눈씻고 찾아봐도 내 주변에는 나를 위해 울어 줄 닭조차 없는데. 그럼 무엇이 그리고 누가 나를 위해 울어 줄까요? 무엇이 그리고 누가 나를 깨우쳐 줄까요? 무엇이 나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고, 누가 저기 남의 죽비라도 빌려 내 어깨를 내리쳐 줄까요? 누가 나의 정신을 옳게 차리게 할까요?


지금 우리는 어디 가서 또 누구를 붙잡고 울고불고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소연 같은 핑계 같은 고백이라도 속시원히 할까요? 내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앞으로는그렇게 되지 않겠다고, 나 지금 외롭고 너무 힘들다고, 그리고 나 정말 잘못했고 정말 미안하다고, 어디 누구에게 가서 목놓을 수 있을까요?




그래도 다시 예수님입니다.

그래도 다시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도 다시 예수님께 가야 합니다.

그래도 다시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예수님은 우리 주님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한참 모자른 제자들입니다.



‘나는 그런 사람 모른다’ 했던, 스승을 너무 외롭게 했던, 그 스승을 나 몰라라 내버려 두고 도망쳤던 그 제자들을, 여기 우리를 먼저 찾아오시는 그 참스승이신 예수께서 그런 한심한 제자들을, 그런 형편 없는 우리를 먼저 찾아 오시니 참 송구한 마음입니다.


“당신은 저 사람을 아시오?”

“네 저는 저분을 잘 압니다. 그분과 함께 다녔습니다. 그분이 하신 일들, 하신 말씀, 그리고 들려 주시고 보여 주시고 가르쳐 주신 그분의 삶을 이제 따라 살려고 하는, 그분의 말씨도 닮고 싶은 저는 그러나 그분의 채 자라지 못한 아직은 어설픈 제자입니다.”


이제 나 그 사람을 안다고, 나 그분을 잘 안다고, 나 그분을 따르는 그분의 제자라고, 그분을 따라 그분처럼 살려고 노력 중인, 아직은 변변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는 제자라고 말합니다.


더는 그분 홀로 외롭게 계시지 않도록 해드려야 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을 갖게 되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12월입니다.


그분께 나의 형편 없음이 나의 못난 구석이 송구(悚懼)스럽고, 그래도 감사하게도 다시 나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아들(神)을 반갑게 맞는(迎), 송구영신(悚懼迎神)의 성탄절이 이제 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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