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동 이야기(17. 호치캐스(스태플러) 이야기)

17. 호치캐스(스태플러) 이야기-

by 홍반장

학교 앞 문방구 안에는 등교 전 아이들로 북적인다.

준비물도 사야 되고 새로 나온 딱지, 불량식품 등을 구경하기 때문이다.

기세는 며칠 전부터 그 좋아하던 쫀드기에 아랑곳 않고,

유심히 진열대 한 물건만 보고 있다.

얼마 전 선생님 자리에 있던 물건과 같은 일명 호치캐스(스태플러)가 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세에게는 만화영화하는 저녁시간에 심부름을 가는 일은 매우 귀찮은 일이다.

그런데 며칠 동안은 귀찮은 심부름에 말대꾸도 안 하고 열심인 기세를 엄마는 의아해하신다.

분명 얻을 게 있어서 그럴 줄은 눈치 못 채신 것 같다.

심부름하고 거스름돈이 있으면 엄마에게 드리면서 예전하고 다른 불쌍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드디어 오랜 심부름과 불쌍한 눈빛으로 쟁취한 웬만한 장난감보다 훌륭한 호치캐스.

허공에 호치캐스를 눌러 디긋자 모양의 호치캐스 알을 날린다.

쏠 때마다 총알을 주워야 하는 새총에 비하면 이건 따발총이다.



기세는 말 안듣는 여동생과 남동생에게도 박자 맞춰 호치캐스알을 날린다.

여동생은 신기하기만 한 그 물건을 한 번만 만져보게 해달라고 애타게 졸라댄다.

기세는 여동생의 아껴둔 용돈으로 산 하드 한입에 선심과 함께 타협한다.

하드를 반 이상 베어 문다.

여동생은 보통 때 같으면 반도 안 남은 하드에 똥그래진 물 번진 눈에 물이 한통 쏟아질 판이다.

하지만 여동생의 기대와 호기심 어린 눈은 기세 호주머니에 있을 호치캐스의 존재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의기양양한 기세는 풍년 상회 옆 큰 나무박스위에 호치캐스를 박는 시늉을 하며

여러 번 시범을 보인다.

애만 태우고 약 올리고 도망갈 것을 짐작했는지 여동생은 급히 손을 뻗친다.

뻗은 손위로 기세의 호치캐스 박는 시범이 왜 하필 동시에 이루어졌는지 아무도 모른다.



‘아뿔싸’

여동생은 손가락 한쪽에 스포이트로 올려놓은 것처럼 핏방울이 조그맣게 맺혀있다.

기세의 머릿속은 그 사건 이후 발생될 여러 가지 상상들로 복잡해진다.

몇 초간 적막이 흘렀지만 벌써 기세는 안 보인지 오래다.



하드도 뺏기고,

피마저 본 여동생은 골목이 떠나가라 원통한 눈물바다를 이룬다.



아무도 없는 집에 몰래 들어온 기세는 호치캐스를 뺏길 것에 대한 고민과

아버지에 혼날 것에 대한 걱정으로 텔레비전도 안 켠 컴컴한 방구석에 두 팔로 다리를 모으고 앉아 있다.



멀리서 들어오시는 아버지와 여동생 목소리에

뒷주머니에 호치캐스를 꾸겨놓고 방구석에 더 파고든다.

들어오신 아버지는 아니나 다를까 기세를 부르신다.

주물공장 한켠에는 목공소에서 가져오신듯한 각목을 드신 아버지가 서 계신다.

아버지는 엎드려 뻗쳐있는 기세의 엉덩이를 내리치며,

여동생을 번갈아 보신다.

여동생은 눈물을 훔치며 기세의 뒷주머니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분명 거기에 호치캐스가 있다는 걸 아는 눈치다.



기세는 분명 호치캐스가 있어 더 아픈 것을 알면서도 아무 말 않고 참고 있다.



방 한쪽에 엎어져 누워있는 기세의 엉덩이에 엄마는 탄식과 함께 따뜻한 수건을 올려놓으신다.

그리고 기가 막히다는 말씀과 함께

조그만 손망치로 납작하게 찌그러진 호치캐스를 펴고 계신다.




풍년 상회 옆에 기세는

여동생에게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바탕 호치캐스 알을 연신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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