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운동회 이야기-
가을운동회 계절이 왔다.
운동회는 학교 모든 학생이 한꺼번에 행사를 한다.
학년별로 또는 반별로 준비할 것도 많다.
한 달 전부터 행사 종목별로 선발된 아이들이 모여 연습이 한창이다.
기세는 태권도 시범, 핸드볼, 배드민턴, 오재미로 박 터트리기, 줄다리기 등 맡은 것도 많다.
수업 끝나고 운동장 스탠드에 도복 입은 아이들이 모여 있다.
기세는 안 해본 태권도라서 도복 띠 묶는 법부터 배운다.
유단자들은 태권도복에 검은띠를 하고 연습하지만,
기세는 흰 운동복에 흰 띠를 매고 있다.
앞줄에는 유단자, 즉 폼 나는 도복에 검은띠들이 서 있고,
뒷줄에는 흰 운동복에 흰 띠를 맨 기세와 같은 꽤 많은 아이들이 차출(?) 되어 있다.
줄 맞춰 서서 선생님 구령에 품새를 따라 한다.
기세는 당연히 유단자들 품새 하는 멋진 모습을 흉내 내기 바쁘다.
뒷줄에 흰 띠를 맨 아이들끼리는 서로 보고 웃고 떠드느라 가관이다.
선생님은 포기한 듯 마지막 구령만 모든 아이들이 잘 맞춰서 소리 내주길 바라는 눈치다.
시범 순서는 모든 아이들이 태극 1장부터 품새를 보여주고,
이어 유단자들이 벽돌 격파 시범을 하는 순이다.
당연히 격파는 앞줄에 서 있는 유단자들 몫이고,
뒷줄은 앉아서 박수를 보내는 순서로 진행된다.
태권도 연습이 끝나기 무섭게 핸드볼 연습장소로 바삐 움직인다.
두 명씩 조를 나누어 공 던지는 연습부터 한다.
운동회날에는 백군, 청군으로 나뉘어 시합을 하기에 기초적인 연습을 하는 것이다.
기세는 손에 거머쥐기도 힘든 핸드볼 공을 어깨너머로 던지는 연습을 하면서도,
아무리 생각해도 왜 선발이 되었는지 이해가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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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회날이다.
준비물은 흰 체육복에 흰 모자(뒤집어쓰면 청색 모자)에
문방구에서 파는 오재미만 준비하면 된다.
물론 기세네 어머니는 구멍 난 양말 몇 개로 만든 오재미를 신발주머니에 넣어주신다.
아침 일찍부터 김밥을 싸시던 엄마는 꼬투리 몇 개를 입에 넣어주시며 이따가 보자고 하신다.
아침 일찍부터 학교 운동장 구석구석에는 돗자리를 깔고 자리를 맡으려는 가족들이 눈에 띈다.
사람들로 운동장이 차기 시작했다.
엄마는 기세와 약속된 장소에 돗자리를 펴시고,
두 동생에게 자리를 맡기고 기세를 찾아 나선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교내 방송이 나오면서 운동회 시작을 알린다.
운동장에 모든 학생이 나와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
그리고 교장선생님 훈시와 국민체조로 시작을 한다.
방송에 태권도 시범단 순서를 알린다.
기세는 준비된 자리에 뛰어가 위치하고, 선생님 구령에 태극 1장부터 품새를 해나간다.
품새가 거의 끝나갈 무렵, 기세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벽돌을 깨는 시범은 유단자들이 하고, 뒤에 앉아 손뼉 치는 역할로 알던 흰 띠 기세는 자기 자리 앞에 놓인 벽돌과 받침대와 보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착각을 하고 내 자리에 가져다 놓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세만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기세.
기세는 깨본 적도 없고, 깰 생각도 없었다.
물론 수건이 두텁게 덮고 있어, 벽돌이 그렇게 아플 거 같지는 않지만
주먹으로 격파를 해야하는건지, 손날로 격파를 해야 하는 건지,
구령 소리에 맞혀 동시에 해야 하는 것이기에 더더욱 따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드디어 선생님의 구령이 떨어졌다.
잠깐의 시간에 기세의 머릿속에 품세 연습 때 했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품새 시에 주먹을 뻗는 정권 지르기를 배웠던 것이 생각났다.
주먹으로 하자라고 기세는 결심했다.
결심이 선 순간 모든 유단자의 기합소리와 기세의 비명소리가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물론 기세의 벽돌은 그대로였고,
기세는 저 멀리 안쓰러워하시는 엄마가 보시는 것 같아 얼굴이 붉은 벽돌색으로 변했다.
퉁퉁 부은 오른손 덕분에
핸드볼, 배드민턴, 오재미 던지기, 줄다리기는 열외.
기세에게는 돗자리에 누워서 김밥 먹으며 구경하는 심심한 운동회가 되었다.
다음날 엄마는
퉁퉁 부은 기세 손을 붙잡고,
병원이 아닌 태권도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