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이상한 책 이야기-
빨간 대문 집이라 불리는 우리 집에 맨 끝방은 쌍둥이네 집이다.
가끔 엄마 심부름으로 방금 한 겉져리나 빈대떡, 쑥개떡을 만들면 가져다드리곤 한다.
아주머니 집 문을 열고,
두 걸음 정도 걸어 들어가면 왼쪽에 삼단 찬장과 연탄아궁이가 있다.
아궁이 옆 같은 높이로 단이 있는데 신발 벗는 곳이다.
그곳에 올라서서 기세는
“아줌마 계세요?” 미서기로 된 방문을 조심조심 천천히 밀어 연다.
전에는 잘못 활짝 문을 열어 방안 가득한 인형들이 밀려 나와 곤욕을 치른 적이 있어서다.
이번에도 방안에 똑같이 생긴 인형들로 꽉 차 있다.
인형을 모아 포대기처럼 움푹하게 만든 한쪽 자리에는 쌍둥이들이 잠들어 있다.
아주머니는 한쪽 손에는 인형,
다른 손에는 실 달린 바늘을 들고,
발앞에는 조그만 책을 놓고, 아이들이 깰까 봐 조용히 읽고 계신다.
아주머니는 “기세야! 이 책안에 있는 글을 많이 외우면 외울수록 행복해진단다.”
이상한 책이라고 생각한 기세는 아주머니 앞에 펼쳐진 책글씨를 “00000 00000 000~”거꾸로 되어 있어도 잘 읽는다.
이 책의 내용을 외우면 행복해진다는 말씀을 듣고는 방학숙제는 뒷전이다.
기세는 개학이 다가와도 방학 때면 일상적으로 버스를 타고 이모네 놀러 간다.
버스를 타면 자주 구토를 하는 기세는 사촌들과 버스를 타면 항상 창피하다.
잘 안 타봐서인지, 버스에서 나는 매스꺼운 냄새 때문인지 모르지만,
비닐봉지가 항상 주머니에 있다.
그래도 구토는 잠깐이고,
신나게 놀 생각에 참을만 한가보다.
한쪽 손에는 그 이상한 책을 들고,
오른손으로 버스 손잡이를 부여잡고 있다.
구토를 참으려는 것인지,
빨리 행복해지는 게 뭔지 알려는지 그 책을 읽으며 중얼댄다.
그러나 결국 머리가 띵해지고,
속이 메슥거린다.
책을 접고 창밖 풍경을 쳐다보며,
연신 침을 삼킨다.
침을 삼키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아서 자주 하는 행동이다.
그러나 속이 매슥거리기 시작하자 한쪽 호주머니에 있는 비닐봉지를 만지작거리며,
주위 시선을 살핀다.
이쁘게 생긴 안내양 누나는 기세 표정에서 상상이 되는지, 알 것 같은 눈빛으로 계속 살핀다.
기세는 안내양 누나의 눈을 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보낸다.
누나 바로 뒷자리에 계신 아주머니가 눈에 들어온다.
아주머니는 조용히 책을 들고 앉아계시는데,
놀라운 건 기세와 같은 책이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온 건지 아주머니 뒤로 가서 몇 쪽이나 외우셨는지 훔쳐본다.
첫 쪽을 보고 계신 것 같다.
아주머니에게 기세는
“아주머니는 왜 아직도 첫 쪽을 보고 계세요?”
한참 기세를 보시던 아주머니는 조용히 말씀하신다.
“이건 많이 외운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야!
많이 외울수록 행복해지지만 반대로 까먹으면 까먹은 만큼 불행이 온단다!”
그 말을 듣자 기세의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외웠던 것들이 머릿속에서 하나, 둘씩 창밖으로 날아가는 듯했다.
기세는 한숨을 깊게 내쉰다.
하얘졌던 머릿속이 시커멓게 변해간다.
그 아주머니의 말씀이 맞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배밑에서부터 올라오며,
안 좋은 징조가 시작이구나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첫 쪽은 절대로 까먹지 않으리라 첫구절만 되뇐다.
기세는 소매로 입을 쓰윽 하고 닦으며,
떳떳한 듯이 안내양 누나에게 인사하고 버스에서 내린다.
기세는 그득한 비닐봉지를 들고 사촌 집 방향으로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