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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 Oct 23. 2021

아바타의 아바타의 아바타

어쩌다보니 게임에 구원받았습니다 - 시즌1 에필로그

게임에 관한 길고 짧은 생각을 묶어내려고 작정했던 건 3년쯤 전의 일이다.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그동안 내가 게임을 하느라 무척 바빴기 때문이다. 이 말은 결코 비유도, 농담도 아니다.


게임은 하는 동안 플레이어의 모든 걸 원하니까.


내 눈, 내 손, 내 두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자그마한 세포 돌기 속 꿈틀대는 신경까지도. 바로 그 점이 게임의 매력이다. 완전한 사로잡힘, 철저한 몰두, 안팎의 뚜렷한 연결. 돋보기로 모으는 태양빛이 검은 종이를 불태울 때처럼,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만 승리를 얻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래도 괜찮은 걸까?

괜찮지 않을지도 모르고, 괜찮을지도 모른다.

게임을 하느라 나는 일곱시에 일어나고 열 시에 잠들던 일상을 벗어나, 일곱시에 일어나고 다음 날 일곱시에 잠든 적이 아주 많다. 게임을 하면서 밥을 먹고, 게임을 하다가 똥을 싸고, 게임을 하면서 잠들고 일어나자마자 게임을 한 적도 셀 수 없이 많다.

사실 이런 행태는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기에, 게임 중독은 결국 세계보건기구(WHO)를 통해서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에 질병에 포함되기까지 했다. 물론, 나는 중독을 질병이라고 인정할 마음이 없다. 정말 그게 질병이라면 나는 게임을 하는 도중이나 하고 난 이후에 몸이나 마음이 아파야 되는데, 게임 때문에 아픈 적이 없기 때문이다. WHO 분들께서는 인간이 아플 수 있는 온갖 요인들 중에서 어떻게 게임을 병의 요인으로 특정할 수 있었는지, 근거 자료의 신뢰도에 대하여 스스로 의심해주었으면 한다.

오히려 나는 게임을 잘만 활용하면 마음을 튼튼하게 만드는 데 꽤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당신도 좋아하는 게임이 생기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다. 무언가에 몰두하는 것만큼 잡생각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또한 인간에게는 활기가, 공백이, 여유가, 재미가 있어야 한다. 쓸모있는 것들로만 인생을 채우는 건 숨막혀 죽으라는 소리와도 같다. 빛과 소금에 더불어 어둠과 설탕이 존재하듯, 게임도 그렇게 삶에 필수적이다. 물론 생존과 진화를 위한 일이 게임보다 더 우선하기만 하다면.


아바타(Avatar)라는 단어는 디즈니 영화를 통해서 널리 알려져 있다.


사전에 따르면 아바타는 ‘하늘에서 내려온 자, 즉 지상으로 내려온 신의 분신을 뜻한단다. 게임에서도 내가 생성한 캐릭터를 아바타라고 부른다. 그럴 때 나의 아바타는 ‘모니터 바깥에서 내려온 자’로서, 모니터 속에서 뛰고 구르며 웃는 실제의 내 대리자가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신이 되고, 그는 나의 분신이 되어 가상현실에서 잠시 잠깐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상상도 해본 적 있다. 어쩌면 인생이라는 게임 판에서도 나라는 아바타를 조종하는, 어떤 상위의 존재가 있지 않을까, 하는. 그 존재가 누구든 우리의 의사소통은 일방통행일 거고, 어쨌든 지금의 내 모든 움직임의 책임은 신의 권한을 부여받은 내게 있을 터였다. 그러다가 설마 지금 나의 아바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에 생각이 미치자 좀 오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말하자면 게임 속의 캐릭터-현실의 나-신과의 관계는, 아바타의 아바타의 아바타가 아닐까 싶어진 것이다. 뚜껑을 비틀어 열면 그 안에 똑같은 얼굴에 똑같은 옷을 입었지만 묘하게 달라보이는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글을 쓰고 모으면서,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게임에서 배웠다는 사실을 다시금 절감했다. 비록 게임의 분신을 조종하는 것에 불과했을지라도 그 안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은 현실의 내게도 깊은 의미를 던져줄 때가 많았으니까.


게임은 방구석에서 즐기는 이세계 탐험이다.


시작 버튼을 누르면 우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토끼를 따라가다 나무 구멍 속에 빠지게 될 운명들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공간에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시간. 우리가 아는 건 한 가지뿐이다. 이 몸이 게임 속 주인공이라는 사실. 내 이름을 몰라도, 심지어 사람이 아니라 괴물, 괴물만도 못한 아메바, 심지어 생명체라고 보기 어려운 픽셀 하나에 불과하더라도 괜찮다. 규칙을, 이기는 방법을 누군가가 설명해주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인생과 더불어, 게임은 계속된다.

나는 그 점이 아주 마음에 든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인생 게임이 나타나길 바란다.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짜릿하고, 심장을 사르르 녹여주며, 괴롭거나 힘들 때에도 변함 없이 시작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잠시 번뇌를 잊게 해줄 그런 게임이 말이다. 그러면 당신도 언젠가 어쩌다보니 게임에 구원받았습니다, 라고 수줍게 고백할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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