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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챙길 여유

일기편지 8

by 북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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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잘 지냈니?



요즘 나는 좀 정신없이 지내고 있어. 여기 미국은 큰 불이 여기저기에서 났거든. 날씨가 워낙 건조한 데다가 강한 바람까지 불던 날, 불길이 한순간에 크게 번졌는데 몇 주가 지났는데도 불길이 잡히지 않아서 다들 걱정이었어.




다행히 내가 사는 곳은 불이 나진 않았지만, 바람을 타고 날아온 시커먼 재와 먼지들이 우리 집 뒷마당에까지 흔적을 남겼지. 밖에 나갈 때마다 마스크를 써야 할 정도였어. 친한 동생네는 경찰이 새벽에 집으로 와서 급히 대피하라고 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고 하고 또 다른 친구네는 정전이 돼서 며칠째 호텔에서 지내고 있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상황 속에서 힘들어했었어.




그런데 이 난리 속에서 독감까지 유행한 거야. 이번 독감은 증상이 심하고 오래간다고 다들 조심하라고 했는데 결국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독감을 걸려왔어. 밤새 열이 나서 몇 번씩 깨고 기침 때문에 목이 아프다며 울고 힘들어했어. 해열제랑 감기약을 번갈아 먹이며 간호했는데, 꼬박 3일 동안 심하게 아프더라고. 그리고 결국 나도 옮아서 몸살에 시달렸어. 불행 중 다행으로 하루만 끙끙 앓다가 겨우 나았지만. 정말이지, 몸도 마음도 한꺼번에 지친 한 주였어.




그런 와중에도 잠깐씩 틈이 날 때 드라마를 보곤 했는데, 유튜브에서 본 드라마 속 대사가 마음에 남더라고.



“나를 챙길 여유 같은 건 애초에 없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나?”



이 대사는 여주인공이 자신의 힘든 삶을 비관하며 한 말이었어. 그런데 그 말이 왜 내 마음에 와닿았는지 생각해 보니 나는 항상 사람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지라고 말했거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말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런 여유조차 사치일 수 있겠구나 싶더라. 하루하루를 버티기에 바쁜 사람들에게는 내가 했던 말들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무거워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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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모른 채

나는 나 대로 책을 읽으라고 하고 쉼을 가지라고 내 중심적으로만 말한 것 같아서 말이야..



근데 있잖아~ 나는 사실 그들의 상황을 무시했던 게 아니야. 어떤 상황 가운데 있을지언정 그래도 나는 여전히 바라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 거야. 그렇게 힘든 사람들에게도 잠깐이지만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가 생기기를.. 길가에 핀 작은 들꽃을 보며 미소 지을 수 있기를 바라는 거야. 그렇게 잠시라도 힘든 세상에서 한숨 돌려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구..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하잖아~ 안 좋은 말들로 초치지 말고, 꿈 꿔 보란 말이야~ 희망을 놓지 말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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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너는 요즘 어떻게 지내니? 혹시 너도 바쁜 일상 속에서 지치고 힘들진 않은지 궁금해. 아무리 바쁘고 정신없어도 너도 너를 챙길 여유가 있었으면 해. 힘들 때 하늘 한번 올려다보고 말이야.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의외로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더라니까. 그러니까 너도 꼭 해봐~ 알았지?!



너에게도 그런 따뜻한 순간들이 찾아오길 진심으로 기도할게.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이든 그런 여유와 용기가 생기길 바랄게..



그럼 또 편지 쓸게.

건강 잘 챙기고, 너도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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