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체질의학 소설> 상사불망

상사불망(相思不忘): 서로 그리워하여 잊지 못함.

by 백승헌

<이 글은 28 체질의학의 발견과 연구, 의통의 전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민족 고유의 의통을 둘러싼 비밀과 음모, 천고의 비법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환단고기에서 동의수세보원에 이르기까지의 한민족 의통이 21세기에 세계 최고의 의학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다. 각종 역병과 괴질, 난치병과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의통과 해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찾는 사람이 천하를 구할 것이라는 예언이 실현될 것인가? 이 소설은 그 의문과 해답을 동시에 던질 것이다.>


67. 천년의 약속을 이어가다.


“국제우편으로 자네한테 편지가 왔네. 여자이름인 것을 보면 애인인가?”

어느 날 김원장이 국제우편물을 들고 승학에게 주며 말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승학은 직감적으로 유림을 떠올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편지였다. 상사불망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승학은 그에게 웃으며 말했다.

“예. 제가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여인의 편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자네 같은 공붓벌레는 난 생 처음 보았어. 그런데 연애도 한다니 놀랍네.

그는 그렇게 농담을 던지고 진료실로 돌아갔다. 승학은 국제우편을 한동안 책상 위에 놓고 생각에 잠겼다.

그 긴 시간 동안 상사불망으로 가슴속엔 화산의 마그마가 들끓고 있었다. 승학은 단 한순간도 휴화산이 된 적이 없었다. 늘 심장의 화염을 껴안고 살아왔다. 그런데 막상 화산이 폭발하기 직전의 상태가 되자 엄청난 긴장감이 흘렀다. 과연 어떤 내용이 들어 있을까?

한편으로 승학은 가슴이 아팠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게 했던 자신이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승학은 일순간 감정이 폭발하듯 눈물이 흘렀다. 승학은 편지 봉투를 찢고 편지를 꺼내 들었다.

눈물 빛에 비춰 글자가 아롱거렸다.



나의 사랑 승학 씨!!

창이 온통 하얗군요.

아침 안개가 가득해요. 사물과 사물 사이가, 사람과 사람 사이가 갑자기 사치스럽게 느껴질 만큼의, 허공에서 한 움큼씩 흩뿌려지는 연한 안개.

오늘은 현실과 나 사이, 삶과 나 사이의 낭떠러지와 공포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흐뭇하고 안심이 되네요. 당신의 사랑을 받게 된 뒤로 난 자주 이런 기분이었지요. 안개에 휩싸여 세상과 현실에 대해 무연하고 아련하고 사치스러운 존재가 되는 느낌...

물론 상승과 고양과 외로움이 잊힌 안락의 시간 뒤에 돌연 마음이 무너지는 듯한 갑작스러운 결락과 이완과 전락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런 낙차가 사랑의 진실일지도 모르죠.


행복과 불행에 대한 극단적인 예단, 기대와 은밀한 좌절, 불운과 행운에 대해 잔잔하게 흔들리는 불안정한 예감들, 열정과 기다림....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안개의 모호성과 아련함의 도움이 아니라 해도, 모든 것이 너무나 선명해도 이젠 당신을 그대로, 그 모습대로 볼 수 있어요. 아무런 갈등도 없고 불안도 없이, 당신을 사랑해요. 마치 나의 낭떠러지를 담담하게 내려다보듯이. '어떤 경우에도 사랑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당신은 아름답고 믿음직스럽고 무섭도록 강렬하고 그리고 연약하게 보이기도 해요.

나는 어떨까요? 병약하고 모호하고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강할까요? 아니면 아무도 모르게 너무나 구제할 수 없도록 속수무책이고 약할까요?

이제 저는 오늘부터 20일 후면 떠나요. 오늘 비자를 발급받았고, 떠날 마음의 준비를 끝냈어요. 당신을 만나면 나는 어떤 감정의 상태에 있을까요?

내 바램은 우리의 처음처럼 그대로였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일에 쫓겨 나를 생각하지 않는 시간에도 나는 오직 당신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 알려드리고 싶어요.

내가 떠나기로 한 뒤부터 이 글을 읽을 당신의 기다림이 걱정돼요. 그러나 아무런 걱정을 마세요. 나는 정확히 20일 후에 당신의 품 안에 안겨 있을 거예요. 우리는 이 번 생에서 어떤 경우에도 함께할 거예요. 저는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는 오직 한 사람으로 남을 거예요.

당신의 유림



승학은 눈물이 흘러내리는 그 자리에 다시 잔잔한 기쁨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유림에게 했던 말처럼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상사불망은 천년의 약속과도 같았다. 아득한 전생에서부터 현생에 이르기까지 잊을 수 없는 기억과도 같았다.

승학의 그리움은 그만큼 깊고 간절하며 절실했다.

유림의 편지를 읽고 나서 승학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전 생애를 책임지며 함께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삶이 평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앞으로 승학은 외국생활을 오래 해야 했다.

그것이 단군 의통의 미션이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넓은 세상 속에서 한민족 웅비의 뜻을 펼쳐야 하는 것이었다.



승학은 유림에게 보낼 편지를 썼다.

보내기엔 시간이 여유롭지 못했지만 그래도 회신을 썼다.


사랑하는 유림!!

나는 당신과 내 영혼을 이제는 더 이상 구분하지 않아요.

당신에게는 우리가 완전히 하나로 일체화되어 있지 않다고 여겨진다 해도 나는 확고해요.

우리는 하나가 확실합니다. 나는 더 이상 방황도 갈등도 없어요. 당신에 대한 나의 방향성은 진리와 같습니다.

어떤 의미로든 흔들릴 수 없는 확고한 선상에서 우리는 존재하는 것이고, 우리의 미래는 현실적으로 견고해지고 있어요. 유림!! 당신도 이제는 나를 느끼고 있죠?

나는 당신의 사랑을 피부로 내면 깊숙이 느끼고 있어요.

봄날의 훈풍으로 내 가슴에 스며드는 당신의 공기를 나는 맡고 있어요. 내가 매 순간 얼마나 당신의 공기를 그리워하고 있는지 아세요? 당신은 상상도 못 하실 겁니다.


사랑은 생명보다 더 절실한 피가 흐르는 거예요.

두 사람의 영혼이 하나로 화하여 아름답게 빛나는 사람들을 보세요. 그들은 모두가 위대함을 사랑의 이름으로 빛냈어요. 과학적인 관점으로는 사랑을 일시적 생리적 현상이라고 규정하죠. 하지만 영혼의 생리는 불변성이고 불멸하죠. 나는 영혼의 생리적인 상태로 당신을 사랑해요.

오직 당신을 향해 내 삶의 지표를 정했고, 한 치 어긋남 없이 그대로 살아오고 있어요.

나는 당신을 위해서라면 어떤 길도 마다하지 않고 외롭게 걸어갈 겁니다. 당신이 나를 기다려준 그 시간을 나는 단 한순간도 잊지 않았어요. 앞으로는 오직 당신만을 향해 살고 싶어요. 나는 지금 이 순간까지 철저하게 당신을 향해 나아가고 있어요.


당신의 공기가 그리워서 숨이 막힙니다.

산소부족으로 인한 허덕임처럼 그리움은 당신과의 떨어진 시간 사이로 끊임없이 나를 고통스럽게 몰아붙입니다. 당신이 그리워요. 미칠 듯한 이 그리움을 당신에게로 전하며, 내 영혼의 소식을 전합니다. 영혼 깊숙이 새겨놓은 그리움을 당신에게 전하며, 앞으로 20일을 매 순간 기다릴 겁니다.

당신의 승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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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학은 그 편지를 접어서 간직했다.

유림이 도착하는 날 건네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유림은 무사히 이곳으로 올 것인가? 염려가 되었다.

모든 상황이 불확실했다. 승학은 모든 불안과 두려움을 떨치고 오직 한마음으로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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